시읽는기쁨

산다는 것 / 배현순

샌. 2006. 8. 23. 13:01

산다는 것이 무언지 아세요

 

새처럼 가벼워지는 일

나무처럼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일

바다처럼 깊고 푸르르는 일

바람처럼 춤추는 일

꽃잎처럼 감싸안는 일

들풀처럼 다시 일어나는 일

햇살처럼 반짝이는 일이지요

 

때론

비처럼 울어도 볼 일

가랑비에 젖어도 볼 일

안개에 묻혀 숨어도 볼 일

이슬처럼 또르르 굴러도 볼 일이지요

 

벼랑끝에 핀

선홍빛 진달래

아스라이 피었다 지는 일

열두 폭 치맛자락에 엎어져

울다 울다 지쳐 꿈꾸어 보는 일이지요

 

- 산다는 것 / 배현순

 

산다는 게 뭔지 나는 몰라요.

뭔가 보물이 들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실없는 농담 같기도 하고

이루어야 할 그 무엇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 헛일 같기도 하고

경쾌한 행진곡 같기도 하고, 음울한 장송곡 같기도 하고

짖궂게 짜여진 각본 같기도 하고, 우연의 연속인 난장판 같기도 하고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다가도꼭두각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고

오솔길을 걷고 싶은데 폭풍우 치는 거친 바다로 내몰리기도 하고

산다는 것은 그 모든 것 같기도 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껄껄껄 웃어버릴까, 한 바탕 통곡을 할까

당신은, 산다는 것이 무언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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