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비에도 지지 않고 / 미야자와 겐지

샌. 2006. 8. 11. 07:56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갖고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언제나 조용히 웃는다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국과 약간의 야채를 먹고

모든 일에

타산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잘 보고 들어 행하고 이해하며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의 숲 그늘

작은 초가에 살며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간호해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말해주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 있으면

부질없는 일이니 그만 두라 하고

가뭄이 들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냉해의 여름에는 벌벌 떨며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 불리고

칭찬 받지도 않고

걱정시키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 비에도 지지 않고 / 미야자와 겐지

 

이 시를 쓴 사람은 욕심도 많다. 그러나 가만히 다시 읽어 보면 아무런 욕심도 없는, 인생을 달관한 사람의 노래 같다. 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이미 되어 있는 것 같다.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 일본인들에게 사랑 받는 시인이요 신앙인이며 농촌운동가로 알고 있다. 37세에 세상을 떴는데 이 시는 뒤에 그의 수첩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런 꿈을 갖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세상은 점점 아름답게 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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