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는 불가사의하다. 뇌의 위치에 따른 기능은 자세히 조사된 듯하지만, 사고나 기억의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밝혀진 것 같지 않다. 더구나 무의식 영역까지 포함시키면 사람의 뇌는 신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꿈도 마찬가지다. 기억의 저장 탱크에 있는 자료들이 무작위로 튀어나와 혼란스럽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모르는 뭔가의 신비한 메시지가 숨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예지몽 같은 것은 믿기에는 너무나 기이하지만 그런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다. 현재 인간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뿐이다. 앞으로 물질과 정신을 통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이론이 등장할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4차원 시공간에 갇힌 인간이 다차원의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가 꿈이 아닌가하는 상상도 해본다. 나에게는 역시 신기하다고밖에 여겨지지 않는 꿈 경험이 몇 개가 있다. 대개의 꿈은 잠에서 깨어나면 잊어져서 아무리 애써도 되살리기 힘들지만, 그 꿈들은 총천연색으로 너무나 생생하게 꾼 꿈이어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아주 선명한 꿈을 하나 꾸었다. 보통 꿈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태몽이 분명하다고 했다. 묘하게도 그 꿈 바로 뒤에 동생이 아들을 낳았다. 지금도 나는 그 꿈이 조카의 태몽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꿈 자체는 아주 단순했다. 시골 고향집에 있는데 하늘 저편에서 큰 불덩어리가 나타났다. 우리 마을 쪽으로 가까이 다가와서 마을을 한 바퀴 돌더니 고향집 바로 뒤에 불꽃을 내며 떨어졌다. 너무 놀랍고 신기해하는데 잠이 깨어버렸다. 이것이 그냥 단순한 태몽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뒤에 조카의 이름을 듣고는 묘한 우연의 일치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이 작명소에 가서 받아온 이름이 불꽃 병[炳], 하늘 호[昊]를 쓰는 병호[炳昊]였기 때문이다. 꿈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제 3자가 지은 이름이 내 꿈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했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신기해하는데 우연이라고만 보기에는 무언가 꺼림칙하다. 조카의 사주에는 정말 불꽃과 하늘이 들어있을까? 그래서 태몽으로 알리고, 작명가를 통해서 같은 의미의 이름으로도 나타난 것일까?
또 하나 잊지 못할 꿈은 종교와 관계 된 꿈이다. 7년 전의 피정 중에 있었던 일이다. 고민과 내적 번민 끝에 그때 나는 다시 태어나는 듯 한 경험을 했다. 그런데 피정 마지막 날 아주 험악한 꿈을 꾸었다. 어느 낯 선 방 침대에 누워 있는데 몸속에서 시커멓고 흉측한 형상을 한 악마(?)가 튀어나와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놈과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잠에서 깼다. 온몸에 땀이 흘러내렸다. 그 뒤로 몇 번인가 이 악마 꿈을 꾸었다. 뒤로 갈수록 악마 무리는 자꾸 많아지고 결국 악마와 천사들의 싸움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전쟁터는 끔찍하고 처참했다. 그러나 승패의 결과는 알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꿈이었다. 꿈이 너무나 생생해서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너무나 기분 좋은 황홀경에 잠기는 꿈을 꾸었다. 천국에 올라간 꿈이었다. 배경은 고대 유적지가 있는 공터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며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늘에서 무엇인가가 나비처럼 춤을 추며 사람들의 머리 위로 서서히 내려왔다. 하얀색의 작은 물체였는데 모두들 그것을 받으려 두 손을 벌리고 이리저리 따라다녔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그것은 성체였다. 나도 무리 속에서 성체를 모시려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왠 일인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입으로 쏙 하고 성체가 들어왔다. 순간 내 몸은 하늘로 빨려들듯이 올라갔다.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시선이 나한테 집중되고 있었다. 엄청난 가속도였다. 구름층을 뚫고 계속 상승했다. 그때의 감격적인 느낌은 지금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 없다. 동시에 뭐랄까 약간의 자만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우쭐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이 들자 속력이 줄어들더니 도리어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때 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기도는 “주님, 절 불쌍히 여기소서!”였다. 그 기도는 나를 다시 위쪽으로 들어올렸다. 계속 그 기도문을 외우면서 올라가서 도착한 곳은 별천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나무가 있고, 건물이 있고, 사람들이 있는 눈에 익은 모습이었지만 지상의 풍경은 아니었다. 물체들은 모두 스스로 빛이 나서 반짝이듯 색깔이 선명하고 화려했다. 이 꿈은 분명히 총천연색이었다. 나는 이곳이 천국이라는 것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었다. 눈앞에는 학교가 있었고 운동장에는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이 2열종대로 줄을 서 있었는데 여러 인종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표정들이 하나같이 밝고 환했다. 나는 나무 그늘에 서 있었고, 조금은 어색한 채 옆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소리 없이 생각만으로 물을 수 있었고, 역시 그 사람의 대답이 느낌으로 전해져 왔다. 그런데 거기서는 특정 종교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저 편안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충만한 곳이었다. 그렇게 잠시 그 세계를 황홀하게 맛보다가 잠에서 깼다. 얼마나 좋았던지 꿈을 꾸고 난 후 며칠 동안은 그 꿈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렜다. 그런데 천국 꿈을 꾼 사람들이 천국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조사했더니 제일 많은 것이 학교였다는 것을 어느 책에서 읽었다. 나도 학교를 보았기 때문에 조사 결과가 긍정이 되었고, 인간에게는 공통의 어떤 무의식적 바탕이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런데 왜 하필 학교인가는 배움과 성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대신에 내용이 어둡고 섬뜩한 꿈도 있었다. 똑 같은 꿈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되었다. 그 중 하나가 거의 일 년 이상 꿈만 꾸었다 하면 나타났던 장면인데, 똥을 누러 화장실에 들어가면 변기마다 똥으로 흘러 넘쳐서 발을 디딜 곳도 없이 지저분한 그런 꿈이었다. 대개 공중화장실인데 늘 악취에 시달리고 똥을 누지 못해 답답해 하다가 잠을 깬다. 깨고 나도 기분이 영 언짢았다. 흘러넘치는 똥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터넷도 뒤지고 꿈의 해석도 찾아보았지만 신통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 그런 꿈은 사라졌다. 일 년 이상 밤만 되면 똥에 시달린 시기였다.
또 하나는 돌아가신 아버님에 관한 꿈이다. 꿈에 잘 나타나시지 않는데 어느 때인가는 같은 모양으로 반복적으로 현몽하셨다. 그런데 아버님 모습이 처량하고 비참했다. 집에 들어오실 때면 비를 맞아 후줄근한 모습에 거의 바보가 되어 계셨다. 말도 하지 못하고, 밖에서 맞은 상처도 있었다. 폐인처럼 계시다가 또 나가시는데 한참 만에 들어오시는 모습은 늘 마찬가지였다. 잠이 깨고 나면 마음이 무척 아팠다. 이런 꿈이 여러 번 보이니 이게 무슨 메시지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소가 잘못 되었는지, 제사를 제대로 모시지 못 한 건지 주변을 자꾸 돌아보게 되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기도를 드리고 연령미사를 넣자 해서 그렇게 했다. 묘하게도 그 뒤로는 그런 아버님의 모습이 다시는 꿈으로 보이지 않았다. 나로서는 불가사의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가끔씩 군대 꿈을 꾸게 되면 제대가 늦어진다거나 재수 없이 다시 군대에 소집되어 가는 꿈을 꾸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언젠가 동료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마찬가지란다. 그런데 군대를 경험한 남자들은 다시 군대에 소집되어 가는 꿈을 공통적으로 꾼다고 한다.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남자들 무의식 속에는 군대 경험이 부정적으로 그것도 아주 강하게 찍혀있는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모르지만 사람에게 있어 꿈의 긍정적 기능이 분명 있을 것이다. 사람이 꾸는 꿈은 보통 이상하고 괴기스런 경우가 많다. 꿈이 없다면 더 달콤한 숙면을 취할 수도 있을 텐데 자면서 굳이 꿈이 나타난다는 것은 무엇인가의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꿈은 거대하며 불가지의 무의식 세계를 살짝 열어보는 커튼과 같을 수도 있다. 앞으로 더 지식이 확대된다면 의식 표층에서는 감지되지 않는 각자의 무의식의 세계를 꿈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고, 나아가서 인류공통의식이랄까 또는 미지의 우주보고와 연결되는 통로가 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무수한 꿈을 꾸면서 그것들이 중구난방의 무질서한 것처럼 보여 소홀히 생각하지만, 그것을 통해 우주로부터 전해지는 소중한 메시지들을 놓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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