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남은 임기 안에 한미 FTA(Free Trade Agreement)를 체결하려는 속셈이 있는 듯하다. 쉽게 말해 FTA는 한국과 미국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과 같다. 관세도 없애고 무역의 규제 장벽도 허물게 된다. 그러면 경쟁력 있는 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세부적인 FTA의 내용과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뭔가 불안하다. 우선 한미 FTA가 체결되면 미국에 의한 예속화가 더 심해지면서 뭔가 모를 늪 속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모든 것이 국익을 위해서라는데 그러나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 예로 농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국익이라면 결단코 반대한다. 그래서 결국 누구의 배를 불리자는 말인가. 노무현 정부가 왜 이렇게 충분한 논의와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밀어붙이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한미 FTA가 시기의 문제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협정이 노리고 있는, 그리고 협정의 결과가 야기할 세상의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기에 나는 반대한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한미 FTA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한미 FTA? 우리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팸플릿을 나눠주었다. 그 젊은이들이 대견하게 여겨졌고, 그리고 팸플릿 내용도 꼼꼼히 읽어 보았다.
1. 준비된 대통령의 준비된 FTA라구요?
한미 FTA가 논의된 건 작년 9월부터입니다. 바로 직전 정부에서 발간한 <FTA로드맵>조차 미국을 최후협상국으로 올려놓고는 갑자기 미국과 FTA를 체결하겠다고 합니다. 온 국민의 미래를 건 협정을 무모함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협상기간 역시 황당하게도 미국 행정부 사정을 고려해 내년 3월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랍니다. 칠레와의 FTA 협상이 3년이 걸렸는데 한미 FTA는 예외없이 모든 것을 개방하는 포괄적 FTA면서도 이렇게 서두르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은 FTA를 실감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협상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고, 협상 결과도 3년간 비밀로 하겠답니다.
2. FTA는 대세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금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는 15개국에 불과합니다. 미국과 FTA를 맺지 않으면 쇄국이라는 바보 같은 소리는 그만 하십시오. 일본, 프랑스, 독일, 스위스가 쇄국정책을 고수하는 나라들입니까? 지난 1월에는 스위스가 농업분야 전면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과의 FTA 협상을 중단했고, 바로 얼마 전에는 카타르도 협상을 중단했습니다. 미국의 FTA가 자국에 훨씬 유리한 방식을 관철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배는 몸집이 큰 미국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싸우게 될 한국, 과연 한미 FTA가 우리의 경쟁력을 키워 줄까요?
3. 우리가 한미 FTA를 원한다구요?
정부는 말합니다. 국민이 한미 FTA를 원한다. FTA는 우리에게 이득이다. 그런데 이 ‘우리’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FTA가 체결되면 농업, 재래 유통시장, 전통 중소기업 등은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기업과 금융서비스 또한 위험합니다. 외국인 투자가 늘어난다는데 외국기업이 들어와서 중소기업을 무너뜨리고 생산한 제품들이 다시 미국으로 수출되어 수출이 증가해도 외국 투자가 늘어난 것으로 기록됩니다. 이러한 이상한 경제 성장의 장밋빛 희망에 포함되는 ‘우리’는 자본주의를 선도할 최첨단 기술을 갖춘 분들, 부동산이 잔뜩 있어서 버틸 수 있는 분들, 그리고 온갖 악조건을 초인적 의지로 뚫고 절대 쫓겨나지 않을 ‘경쟁력’을 갖춘 분들입니다.
4. 소비자에게 이득이라구요?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경제 주체입니다. 다국적 기업의 엄청난 물량 공세 속에서 우리 산업이 황폐화되고 실업자가 늘어난다면 소비는 대체 무슨 돈으로 될까요? 12년 전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쌀 칼로스가 강한 경쟁력을 가지고 국내 농업 기반을 모두 무너뜨리면 우리에게는 어떤 대안도 남지 않습니다. 누구나 칼로스를 먹어야 합니다. 공공서비스의 파괴도 무섭게 우리를 압박할 것입니다. 미국은 의약품의 카피마저 원천 봉쇄하여 값비싼 오리지널 의약품만 남기려 합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약값은 보호하겠다는 거지요. 값싼 미국 자동차를 수입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배기가스 제한도 풀었습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환경 역시 무참히 파괴될 것입니다. 한미 FTA는 우리의 생명권,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값싼 상품들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절대적으로 제한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권리 따위는 다국적 기업의 이익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뭐, 언제나 돈이 많은 최상류층은 상관없겠군요. 멕시코의 최상류층은 FTA 체결 후 두 배 이상 자산을 증식했다는군요. 과연 한미 FTA가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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