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은 괜히 기분이 우울해진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괜히 신경이 예민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서로가 얼굴을 붉히는 일도 생긴다. 오늘도 몇 가지 충돌이 있었다.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리고 바람도 거세다. 마음은 어디론가 붕 떠서 날아간다.
이런 날은 마음이 맞는 사람과 만나 커피도 좋고 막걸리도 좋고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말 없이앉아있고 싶다. 아무 말이 없어도 아무 부담감이 없는 그런 사람의 얼굴을 마주보고 싶다.
아내와 마주 앉았다. 밖에는 빗소리가 들리고, 옛 팝송을 틀어놓고, 막걸리에 호박 부침개를 앞에 놓았으니 모든 게 갖추어졌다.
어디선가 조사한 것을 보니까 남자들이 배우자로서 제일 원하는 것이 친구 같은 아내라고 한다. 공감한다. 젊었을 때는 애인 같은 아내를 원할지 몰라도나이가 들면서는 친구 같은 아내를 바라게 된다. 어쩌면 자연히 부부 사이가 그렇게 되어 간다고 봐야 겠다.
우리둘의 입맛에는 '長壽'라는 상표가 붙은 서울막걸리가 제일 낫다. 그리고 부침개는 호박이 최고다. 호박 부침개는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비록 낮 동안 기분은 우울했지만, 막걸리 두 병과 호박 부침개 덕분에 울적했던 기분이 확 녹아버렸다. 창 밖의 빗소리와 달콤한 멜로디가 무척 아름답고 고마운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