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의 등산회동료들과 함께 아침가리골을 다녀왔다.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아침가리골은 한자로 조경동(朝耕洞)으로 표기되는데, 구룡덕봉 기슭에서 발원하여 20 km를 흘러 진동리에 이른다. 아침가리골은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계곡을 따라난 길도 중간 중간에 끊어져 있어 여러 번 계곡물을 건너며 올라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있는 계곡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계곡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고 망가지는 과정을자주 보게 된다. 사람들이 찾으면 숙박시설과 유흥시설이 생기고 개발 바람이 부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그렇게 되면 오염이 뒤따르고 맑은 자연을 찾는 의의가 없어진다. 아침가리골에도 대규모 숙박시설이 들어선다는 얘기가 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또 하나의 아름다운 계곡을 잃게 될까봐 걱정이다. 계곡으로 중장비가 들어가고 길을 내는 작업이 시작되면 계곡의 생명은 끝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계곡을 거의 다 다녀 보았다는 동료한 분은 현재의 아침가리골을 우리나라 최고의 계곡으로 부르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본 아침가리골이 아마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마지막 모습일 거라고 어두운 표정으로 얘기한다. 제발 인간의 편의를 위해 진입로를 포장하고 계곡에 삽질을 하는 일은 없기를, 차라리 이곳은 불편함 그대로 놓아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길을 넓히면 사람들이 몰려오고 그러면그 뒤의 진행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일행은2 일 아침에 진동리에서 방태천을 건너 아침가리골에 들어섰다. 휘어지며 끝없이 이어지는 원시의 계곡 모습에감탄사가 이어졌다. 계곡은 넓고 흐르는 물의 양도 예상보다 많았다. 폭포 같은 급경사가 없이 완만한 계곡은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계곡 자체보다는 꽃을 보는 것이 목적인 나는 중간에서 일행과 헤어져 내려오며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강원도까지 멀리 온 것은 새로운 꽃을 보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계곡을 따라 핀 꽃들은 종류나 수량이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러나 20 종 가까이 친근한 봄꽃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아침가리골에는 돌단풍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막 새싹이 돋아나는 것부터 꽃봉오리가 맺힌 것, 그리고 활짝 핀 것까지 자랄 여지가 있는 돌 틈마다 돌단풍이가득했다. 봄의 아침가리골은 돌단풍골이라고 부를 만했다.
그 외 네 종의 제비꽃 종류와 오랜만에 동의나물도 볼 수 있었다. 옆의 동료가 매번 똑 같은 꽃을 보아도 그렇게 좋느냐며 묻는다. 사실 꽃을 보러 밖에 나가더라도 이젠 대부분이 전에 만났던 것들이다.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는 드물다. 그러니 동료의 질문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꽃이 피어있는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설렌다.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은 없지만 나에게 꽃은 늘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매번 같은 사람을자주 만나더라도 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음과 마찬가지다. 같은 종이라도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피어있는 모습은 그래서 나에게 주는 감흥은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