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타오랍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타오가 아니랍니다.
'이 이름이 타오랍니다'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정한 타오가 아닙랍니다.
그것을
타오라고 말하거나
타오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이유는
타오라고 말하기 이전에
타오라고 이름 붙이기 이전에
이름 없는 타오의 세계가
아득히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 그럼
이름 없는 세계로 떠나 볼까요?
옛날 옛날에
이름 없는 세계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 없는 세계에서
하늘과 땅이 태어났지요.
바로 그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이루 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름들이 태어났답니다.
그러니 하늘과 땅은
이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지요.
본디
이름 있는 것에는
욕심이라는 녀석이
딱 달라붙어 있답니다.
욕심이 달라붙으면
이름 있는 것의 겉모습만 보인답니다.
욕심이라는 녀석이 떨어져야
비로소 참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말이지요.
이름 있는 세계와
이름 없는 세계는
같은 곳에서 나왔답니다.
단지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
이름 있는 세계 저편에
이름 없는 세계가
아득히 펼쳐져 있습니다.
밝음과 어둠이 함께 어우러진 세계가
그 저편에 아득히 펼쳐져 있습니다.
또 그 저편에는.....
이름 없는 세계의 입구에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이
넘나드는 문이 있답니다.
그 신비의 문을 똑똑 두드릴 때,
사람은 살아가는 힘(Life Forse)을 얻을 수 있답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요,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덕경은 시다. 도덕경은 가슴으로 읽어야 한다.
오늘부터 다시 도덕경을 읽는다. 마침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적힌 '타오(퓨전도덕경)'라는 책을 만났다. 일본의 한 시인이 쓴 책이지만 황소연 님의 번역이 더욱 돋보인다. 내가 붙이는 사족은 군더더기에 불과할 뿐이다.
머리[知]가 아닌 가슴[精]으로, 나아가 몸[行]으로 읽을 수 있기를, 그래서 그분의 말씀으로 내 몸과 마음이 따스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