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마티스와 숭례문

샌. 2006. 3. 6. 13:52

어제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 화가들'이라는 전시회를 관람했다. 야수주의 탄생 100 주년을 기념해서 열리는 전시회였는데 마티스를 비롯해서 대표적인 야수주의 작가들의 유화 작품이 100여 점 이상 전시되고 있었다.

야수파들은 자연의 색을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대신 감성에 의해 보고 싶은 대로 또는 보여주고 싶은 대로 현실과 다소 무관한 색채를 이용하는 새로운 회화세계를 열었다고 한다.

전시회에 갔지만 미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므로 미술사적으로 야수파가 가지는 의의를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 전의 경향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나고 독특한 것인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색채의 마술사라는데 그런 특징 또한 내 눈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아서 답답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열심히 들여다보고 진지한 표정을 짓는데 나는 그저 대충 훑어 보기만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한 하루였다.

다만 그림이라는 것이예술을 위한 예술에만 그친다면 뭔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은 들었다. 당시의 세기말 적인 분위기, 또는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이나 절망같은 것이 그림에서 읽혀지지 않았다. 꼭 현실 비판이 아니더라도 당시의 시대상을 그림을 통해 읽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았고, 또 모든 예술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술관에 이어서 100 년만에 중앙통로(홍예문)를 개방한 숭례문을 찾았다.

1907년에 전찻길을 내면서 중앙통로를 폐쇄한후, 지난 3월 1일에 100 년만에 처음으로 개방한 것이라 한다. 그래선지 이 사실을 반기며 구경 나온 시민들로 통로는 가득했다.

옛날에는 성안으로 들고나는 출입구였는데 옛사람들이 밟던 길을 다시 밟아본다는 것이 감회가 새로웠다. 아마 찾아온 사람들 모두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통로 천장에 그려진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푸른색, 다른 하나는 노란색으로 채색된 용 두 마리가 구름 무늬 사이를 힘차게 날아가고 있었다.

용은 봉황과 함께 임금이나 황제를 상징한다고 알고 있다. 임금이 거처하는 성이니 성문의 용 그림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또 다른 설명은 용은 물과 관련이 있고,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서 용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다. 이것은 숭례문의 현판을 세로로 쓰면서까지 화기를 억누느려 한 의지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만의 시내 나들이가 우연히 100을 기념하는 두 곳이 되었다.

100 년 전의 숭례문 주변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며 앞으로 100 년 뒤의 모습은 또 어떻게 변할지 내 작은 머리로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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