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생명 - 그 아름다움

샌. 2006. 2. 3. 10:05

어제 오후에는 중림동 가톨릭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김선규 기자의 사진전을 보았다.

사진전의 타이틀은 '생명 - 그 아름다움'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생명들을 따스한 시각으로 포착한 작품들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좋은 작품이란 이렇게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같이 공감하게 만든다.

특히 각 사진마다 제목과 함께 설명이 적혀 있어 좋았다. 그 글에서 또한 작가의 생명 사랑이 진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전시된 몇 작품을 여기에 옮겨본다[www. ufokim.com].



<중랑천 잉어의 꿈>

″김형 팔뚝만한 잉어가 하늘로 뛰어올라″
지루한 장맛비가 그친 금요일 아침 중계동에 사는 친구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간밤에 사납게 퍼붓던 비로 인해 중랑천 물은 무서운 기세로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2시간의 기다림.
마침내 팔뚝만한 잉어가 수중보위로 힘차게 뛰어올랐습니다. 생명의 물길을 따라 콘크리트 장애물을 뛰어 오르는 잉어는 자신을 닮은 새로운 생명을 꿈꾸겠지요.




<참새의 갈증>

문득 걷고 싶은 화창한 오후였습니다. 회사로 오는 길에 광화문에서 내렸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을 온전하게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화사한 햇살에 빛나는 신록을 보면서 발걸음은 절로 경희궁터로 가고 있었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활짝 기지개를 켭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한 포기 풀이 되고 한 마리 새가 됩니다.

신나게 놀던 참새들 중에 한 마리가 목이 마른 듯 수돗가를 기웃거립니다. 도심에서 딱히 물먹을 곳이 없던 참새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수도꼭지를 한참 노려보던 참새는 마침내 물 한 방울이 떨어지자 날렵하게 날아올라 물을 마십니다.

삭막한 도시에서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참새가 언젠가는 화장실을 노크하는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꽃뱀' 유혈목이의 모정>

지난달 말 무인도 취재를 위해 서해안 덕적도 진리에서 서포리 선착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밭지름 해수욕장을 지나 서포리에 다다랐을 무렵 시멘트 도로 위에 꿈틀 거리는 물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꽃뱀으로 불리는 유혈목이였습니다.

상처 입은 유혈목이가 피를 흘린채 필사적으로 자신의 알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아마 도로위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자 본능적으로 알을 쏟아내고 그것을 지키고 있었던것 같았습니다. 끝까지 알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유혈목이를 간신히 숲으로 돌려보냈지만 알들은 무섭게 달려오던 트럭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렷습니다.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에게 세상을 열어주려는 엄마 뱀의 처절한 모정이 섬을 떠나서도 한동안 가슴아프게 다가옵니다.




<철창 속의 누렁이>

복날이 모두 지났습니다. 올 여름도 개고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개장국 한그릇 비우셨겠지요. 개를 사랑하는 분들은 도살당한 수많은 개들 생각에 가슴이 아팠겠지요.

지난주에 산골 오지주민들의 여름나기 취재를 위해 충남 금산 사기막골에 갔었습니다. 마을을 둘러보다 좁은 철창 안에 갇혀있는 누렁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낮선 사람을 보고도 짖을 생각도 하지 않는 누렁이는 세상을 체념하듯 보였습니다. 촛점 잃은 눈으로 이방인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되도록 누렁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서둘러 사진을 찍고 돌아섰지만 카메라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온 누렁이의 슬픈 눈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말복이 지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기막골 이장님께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누렁이가 아직 살아있다 말에 내심 기뻤습니다. 즐기지는 않지만 저도 가끔은 개고기를 먹습니다. 하지만 이 누렁이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고구마 거두는 어머니 손>

일요일 오후, 경기도 화성에 있는 시골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구마를 캤습니다. 흙 속에서 어른 주먹만한 고구마가 줄줄이 달려나오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맞은편 이랑에서는 손주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다시 고구마를 캐십니다.

문득 고구마 캐시는 어머니 손에 가득한 주름을 발견했습니다. 언제 저리도 늙으셨는지, 참 무심한 세월만 흐른 것 같습니다. 흙이 낀 손톱에 빛바랜 봉숭아물이 제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어머니는 행여 한 뿌리라도 다칠까봐 황토흙을 걷어내고 맨손으로 조심스럽게 고구마를 걷고 계십니다. 당신의 자식들도 저리 소중하게 어루만지며 키우셨겠지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흩어진 마음 꿰맨 고무신>

낡은 고무신 한 켤레가 왜 이렇게 마음을 끄는지 모르겠습니다. 전북 무주의 한 농가에서였습니다.
나무로 만든 댓돌 위에 고무신 한 켤레가 단정하게 놓여있었습니다. 뒤축이 낡아서 정성스레 꿰맨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밭일을 마치고 고무신에 묻은 흙을 탁탁 털어 댓돌위에 가지런히 벗어놓았을 주인을 떠올립니다. 낡은 것도 소중히 여기는 농부의 마음이 그대로 보이는 듯합니다. 꿰맨 고무신은 그래서 궁색해보이지 않습니다.

낡고 오래됐지만 아직도 주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자부심은 새 것이 받는 사랑과는 비교할 수가 없으니까요. 새 것만 좋아하는 우리 세대를 돌아봅니다. 정말 아름다운 것은 새 것이 아니라 손때 묻고 정든 물건이라는 것을...

하루가 다르게 기름값이 오르는 요즈음, 그래서 농부의 낡은 고무신이 더 마음에 다가왔나 봅니다.




<한여름 밤 모기 부부의 짝짓기>

‘’위윙~~~‘’

무더운 날이 계속되면서, 한 여름밤 반갑지 않은 소리가 귓전을 맴돕니다. 문화일보 신문을 돌돌 말아 들고 기어이 모기를 찾아냈지만 새로 바른 벽지에 차마 때릴 수 없어 모기약을 뿌렸습니다.요즘 모기들이 초강력 살충제만큼이나 강해진건가요?어지간히 뿌려도 잠시 정신을 잃었던 모기는 바로 어디론가 날아갑니다.

예년보다 더 후덥지근할 것이라는 올 여름. 모기가 더 극성을 부리겠지요. 더위를 피해서 공원길을 산책하다가 열심히 작업(?)인 모기 부부를 만났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한 방 날리고 싶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들에게도 거룩한 시간이라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십시오. 올 여름 모기들의 대습격이 시작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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