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행복에 관한 단상

샌. 2005. 7. 13. 13:11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헤르만 헤세의 시처럼 행복은 인간 삶의 으뜸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결국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이 현실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도 미래의 행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만약 그런 희망이 없다면 삶은 끔찍하게 잔인할 것이다.


그런데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하게 되기 위한 객관적 조건이 있는 것인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행복만큼 주관적이며 추상적인 것도 없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하면,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불행에 젖어있는 사람도 있다.

행복은 단순한 자기만족 같기도 하고, 좀더 깊고 내적인 영혼의 평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느끼는 행복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나는 객관적인 외적 조건이고, 다른 하나는 주관적이며 내적인 측면이다. 그리고 각 개인의 행복에는 주관적이며 내적인 요소가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얼마 전 영국에서 세계 7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행복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예상 외로 상위권은 나이지리아, 멕시코,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 같은 나라들이 차지했고, 소위 선진국들은 20위 권 정도에 들어있었다.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도 꼴찌인 47위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6, 70년대에 비해 소득 수준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행복지수는 도리어 뒷걸음을 치고 있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와 무관하다는 것이 이미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해 증명된 바 있다. 그래도 이런 결과는 놀라움을 준다. 우리의 뇌리에는 잘 살아야 행복해진다는 선입견이 아직도 단단히 박혀있기 때문이다.


또 언젠가의 조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인들이 가장 행복함을 느끼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일인당 국민총생산이 400$에도 못 미치고, 인구밀도가 세계 1위이며, 문맹률이 70%나 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이 나라의 국민들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행복이 마음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삶의 질은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무지(無知)를 행복으로 볼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행복은 객관적 상황보다는 각자의 삶의 태도에 대한 문제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방글라데시인들의 행복의 비결은 비록 가난하지만 허황된 꿈을 꾸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의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나 높은 기대치 또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가족간에 또는 이웃간에 오가는 따스한 정이 원인일 것이다.

5, 60년대의 우리나라도 지금의 방글라데시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는 방값도 쌌고, 쌀과 김치와 연탄만 있으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더 잘 사는 사람이래야 궁핍만 면했을 뿐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소득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발전이라고 부르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소득은 늘어났지만 지출할 것 또한 많아졌고, 그만큼 사람들의 욕심도 팽창하고 있다. 아니 세상 자체가 탐욕을 부추기고 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늘 갈증에 시달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마저 황폐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본 영화가 기억난다.

낮에는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일을 하는 독일군 장교가 저녁이면 집에 돌아가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딸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행복해 하는 장면이다.

낮에 가녀린 유태인 소녀를 아무 거리낌 없이 가스실로 보낸 사람이 같은 또래의 자기 딸은 공주같이 키우며 만족해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과연 이 독일군 장교는 행복했을까? 불의(不義)에 바탕을 둔 이런 가정의 안락함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참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구별해 낼 능력이 있는 것일까?


행복!

누구나가 행복을 꿈꾸고 그리지만 그 색깔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분명 행복은 물질의 풍요나 심신의 안락함, 또는 쾌락에서 오는 단순한 자기만족은 아니다. 행복은 우리의 내부에 있는 더 깊은 차원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것은 모든 생명체를 포함한 우주와 함께 어울려 존재하고 함께 기뻐하는 영혼의 평화로운 상태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런 참된 행복은 우주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대하지 마  (0) 2005.07.19
그럼에도 불구하고  (0) 2005.07.15
못 살아도 돼  (1) 2005.07.11
비 젖은 밤에  (0) 2005.07.02
인디언 이름  (1) 200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