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잠들지 못하는 나라

샌. 2011. 8. 28. 13:19

언젠가 친구 집 문상을 마치고 밤 두 시경에 서울 시내를 지난 일이 있었다. 이 시간쯤이면 거리가 한가해 쉽게 집에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사당동에서 이수 사거리를 지나는데 차들이 밀려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거리는 온통 불야성이었고 한밤중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여느 초저녁 풍경과 다름없었다.

우리나라 도시는 밤이 없다. 어쩌다 모임이 늦게 끝나 밤거리에 나서면 낮보다 더 복잡하고 북적인다. 이 사람들은 언제 잠을 자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밤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 별로 없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한밤중도 낮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니 출근 시간의 지하철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졸고 있다. 잠이 부족하지만 다음날도 일찍 잠들지 못한다.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으니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도 못 자는 건 마찬가지다. TV는 밤늦은 시간까지 재미있는 드라마나 연예 프로로 시선을 붙든다.

10여 년 전 독일 연수를 갔을 때 받았던 문화 충격 중의 하나가 저녁 풍경이었다. 저녁이 되면 도시 거리에 사람들이 드물었다. 가게도 저녁 8시면 대부분 문을 닫았다. 물어보니 집에 일찍 들어가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번쩍이는 불빛과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한국의 밤거리에 익숙한 눈에는 다른 행성에 간 듯한 느낌이었다. 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살기도 하는 구나,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가 오히려 별세계였다.

현대에 들어 한국인은 야행성 종족이 되었다. 일하는 데나 노는 데에 낮 시간으로는 모자라고 주무대가 밤이 되었다. 어린이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 어린이의 수면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다는 조사 보고도 있었다. 6, 70년대의 산업화시기도 아니고 이젠 여유를 찾아야할 텐데 한국인들은 여전히 바쁘다. 몸은 혹사되고 마음은 스트레스로 찌든다. 그걸 풀려니 밖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술을 동무 삼는다. 가정에서 가족과 지내는 시간은 적어지고 밤 문화만 번창한다. 지나친 경쟁사회의 슬픈 단면이다.

문명의 테크놀로지는 밤을 낮으로 바꾸었다. 도시의 밤은 낮보다 더 휘황찬란하다. 도시인들은 밤 없는 밤을 맞는다. 도시인은 마치 알을 많이 낳게 하기 위해 밤새 불을 밝혀두는 양계장의 닭들 신세와 닮았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잠자는 농경시대의 생활 리듬은 수만 년간 내려오며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된 습관이다. 이 리듬이 깨질 때 사람의 몸과 마음은 병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증세가 심각하다는데 있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들도 우리만큼 조바심치지는 않는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열심히 달려 왔다. 이젠 숨을 고르고 천천히 걸어도 좋으련만 관성 때문인지 발걸음은 여전히 분주하다. 지금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경보 시합을 보면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연상했다. 달리지는 않지만 달릴 때보다 더 힘겹다. 과거 고성장의 시대 때보다 우리는 더 지쳐있다. 이젠 1등을 다툴 게 아니라 좀 늦게 가더라도 옆 사람과 손잡고 함께 걸어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 도시의 밤도 조용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