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임금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 공자가 말한 본뜻이 무엇이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단순히 자기 위치와 신분에 맞게 처신을 잘 하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믿고 싶다.
‘~다워야 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교직에 있었을 때 학생들에게 잘 썼던 말이기도 하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행동하라고 훈계할 때마다 써먹었다. 그런데 학생이 학생다워야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선생 말 잘 듣고 교칙 잘 지키고 공부 외에 다른 데는 관심을 가지지 말고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 되라는 뜻은 아닐까. 내가 썼던 학생다워야 한다는 말에는 분명 그런 뜻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속 좁은 단견이었다. 선생 노릇 편하게 하기 위해서 고분고분한 어린 양을 요구한 것이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말을 한 꺼풀 벗겨보면 그것이 은연중 지배체제에 순종하는 인간을 키우려는 사회적 고정관념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모범생을 표창하는 것도 순응시키는 사회화 과정의 일부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착한 학생’이란 외부의 명령에 순종하는 정신으로 길러진 학생을 뜻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노예지수’가 높은 학생이다. 가정에서도 그런 의식화 과정이 일어나고 부모도 잘못하면 악역을 맡을 수 있다. 말 잘 듣는 착한 자식이 선은 아니다. ‘다워야 한다’는 말에 거부감이 생기는 건 이런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를 비난할 때 저놈들은 ‘선생답지’ 못하다고 흔히 말했다. 선생이면 선생다워야지 스스로를 노동자로 지칭하며 바른 교육을 한다고 설치니 비위에 상한 것이다. 그들은 애들이나 열심히 가르쳐 좋은 대학에 보내는 선생이 가장 선생답다고 생각한다. 정치나 사회의식은 없을수록 좋고 지식 장사꾼 노릇만 잘 하면 된다. 대개의 ‘답다’는 말에는 사회체제가 요구하는 보수적 인간을 옹호하는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가치보전적 계급의식이 들어있는 말이다.
‘~다워야 한다’는 말은 적게 쓰일수록 좋다. 그 말 속에는 보수적 가치관이 강하게 들어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공동체에서는 이런 말을 강조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남자다움이 강조될 때 성적 소수자나 남성 안의 여성성이 존중받을 여지는 줄어든다. 공자가 말한 ‘君君臣臣父父子子’는 그런 점에서 신중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공자 시대의 신분사회에서 공자 역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권력과 기득권을 옹호하고 약자를 외면하며 체제 유지에 이용되는 이데올로기라면 배격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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