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를 읽고 있다. 7세 때부터 시를 짓기 시작해 74세 되던 해에 아내와의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시가 마지막이었다니 선생의 일생은 시와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선생의 시를 통해 내면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고, 고상한 인품도 느껴볼 수 있어서 좋다.
유배지에서 쓴 시 중에 '유배지의 여덟 취미'라는 게 눈에 띈다.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선생만큼 아름답게 승화시킨 분도 없을 것이다. 책 읽고 글 쓰는 외에 선생은 유배지에서 어떤 취미를 가지고 살았을까? '유배지에서의 여덟 취미' - 바람에 읊조리기, 달구경, 구름 보기, 비 바라기, 산에 오르기, 물가에 가기, 꽃구경, 버드나무 완상하기 - 를 보며 선생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읽는다.
바람에 읊조리기
서풍은 집을 지나오고
동풍은 나를 지나가네
불어오는 소리만 들릴 뿐
바람 이는 곳은 보이지 않네
西風過家來 東風過我去 只聞風來聲 不見風起處
달구경
밝은 달이 동쪽 바다에 뜨면
금물결이 만리에 일렁이는데
어찌해 강 위의 달은
쓸쓸히 강물만 비추는 걸까
明月出東溟 金波탕萬里 何如江上月 寂寞照江水
구름 보기
뜻 있어 구름을 보는 것도 아니고
뜻 없어 구름을 보는 것도 아니네
뜻이 있건 없건
해 질 무렵까지 눈길이 머무네
有意不看雲 無意不看雲 요將有無意 留眼到斜훈
비 바라기
고향집은 여기서 8백 리
맑거나 비 오거나 같은 거린데
맑은 날은 가까운 것만 같고
비 오는 날은 멀게만 느껴지네
家鄕八百里 晴雨無增損 晴日思如近 雨日思如遠
산에 오르기
북극이 땅 위에 위치한 것이
천 리마다 4도가 어긋난다지만
높은 곳에 올라 고향을 바라보니
해 지도록 서글프게 서 있네
北極之出地 千里差四度 猶登望鄕臺 초창至日暮
물가에 가기
물은 절로 흐르며
콸콸 막힘이 없네
아마도 천지가 생겨날 때에
산이 무너져 그리 됐겠지
流水自然去 活活無阻애 憶得鴻荒初 丘陵有崩汰
꽃구경
백 가지 꽃 꺾어서 봐도
우리 집 꽃만 못하네
꽃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 집 꽃이어서지
折取百花看 不如吾家花 也非花品別 지是在吾家
버드나무 완상하기
천 가지 만 가지 버드나무는
가지가지 푸른 봄을 만났네
가지가지 봄비에 젖으면
가지가지 사람의 맘을 졸이네
楊柳千萬絲 絲絲得靑春 絲絲霑好雨 絲絲惱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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