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저녁이 있는 삶

샌. 2012. 10. 19. 08:08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한 후보의 구호가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구호로만 치면 단연 대통령 후보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저녁이 있는 삶'만큼 우리의 고달픈 현실을 위무해 줄 말이 있을까 싶다.

회사에 다니는 자식을 보면 이게 사람이 사는 삶인가 싶어진다. 거의 매일 야근에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이다. 부부가 맞벌이하는데 둘 다 사정이 비슷하다. 즐거운 일이라도 밤낮 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면 짜증이 안 생길 리 없다. 얘기를 들어보면 받는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평일에 가정생활이 불가능한 건 물론 어떤 때는 주말도 없다. 도대체 뭘 위해서 일을 시키고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한은 총재가 '야근도 축복'이라는 말을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변명은 했지만, 사회 지도층 의식이 이러니 근무 환경이 개선될 리가 없다. 기업은 직원을 어떻게든 부려 먹어서 투자한 인건비를 뽑으려고 한다. 근로시간이 OECD 국가 중 최대인 한국은 그 정도가 거의 착취 수준이다.

이럴 때면 늘 독일이 생각난다. 전에 독일 연수를 갔을 때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거리에 인적이 끊어지는 게 신기했다. 사람들이 다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집으로 들어갔다는 대답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은 안 하고 놀기만 하는 것 같은데도 경제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았다. 삶의 여유가 있고 풍요를 즐기는 사회였다. 언제쯤 되면 우리나라도 이런 단계에 들까를 생각하며 부러워했었다. 그러나 한국은 역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것 같다.

기업은 항상 경쟁의 논리를 들먹인다. 피땀을 흘리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인가? 도대체 이런 패러다임 외에 다른 방식으로 작동되는 사회는 없는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이나 성과가 아니라 인간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시스템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관리자나 종업원 모두가 마찬가지다.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 나서야 한다. 빼앗긴 저녁을 돌려받아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친 정치인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런 구호가 등장하는 자체가 희망의 신호다. IT 분야를 중심으로 고정관념을 깨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먼저 CEO의 경영 철학이 달라져야 한다. 아직도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회전의자를 차지하고 있으니 변화가 없다. 심지어는 '레드 오션'이 지속되길 바라는 꼴통도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우선이다. 일반 기업에서도 우선 야근 안 하기 운동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남는 시간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소득이 높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 것을 양보하고 일을 나누면 실업자를 고용할 여지도 생긴다. 독일 같은 사회를 우리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의식이다. 이젠 돈과 일에서 삶의 질로 방향 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 가족이 따스한 저녁 밥상을 함께 하는 게 평범한 일상이 되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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