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무갑산에 오르다

샌. 2013. 3. 11. 17:20

 

너도바람꽃을 보기 위해 무갑산을 찾았다. 계곡이 시작되는 등산로 입구에 무갑사 주지 스님께서 직접 지으신 시를 걸어놓으셨다. 제목이 '너도바람꽃들의 아우성'인데, 앗 뜨거라, 얼굴이 화끈했다.

 

얼굴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내 목이 부러졌어

내 허리가 꺾어졌어

조용히 피고 지고 했는데

왠 전쟁이야

 

야생화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꽃이 몸살을 앓고 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도리어 꽃이 수난을 당한다. 땅은 패이고 무심한 발길에 짓밟히기도 한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자신의 사진에만 관심이 있고 꽃이야 어떻게 되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는 배경이 좋은 곳에 옮기기도 한다. 그러면 꽃은 죽는다.

 

여기 무갑산도 너도바람꽃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엄청 몰리고 있다. 오늘은 평일인데도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계곡으로 들어서니 내가 낄 자리가 없다. 사진 찍는 것도 꽃에게 미안하다. 그냥 통과해서 산을 오르기로 했다.

 

 

이른 봄의 고즈넉한 산길이 참 좋았다.

 

산의 품에 안기면 세상의 소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나가는 바람에 마른 나뭇잎 사각이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 가끔씩 깍 깍 까치 소리가 들릴 뿐이다. 산에 들 때 마음이 가장 편안해진다. 지금 이대로가 최상의 상태다. 텅 빈 마음에 잔잔한 희열이 샘솟는다. 산이 주는 선물이다.

 

산길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서울에서 살다가 위암 수술을 받고 무갑산 아래로 온지 7년이 된다 했다. 매일 무갑산을 오르내리면서 건강을 찾았다는 그분의 얼굴은 산을 닮아 있었다.

 

 

 

정상에 서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내려다 보였다. 여기로 온지 어느덧 2년이 되었다.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다 비슷한지 이젠 하나둘씩 정이 붙어가고 있다. 이젠 서울 때도 많이 벗겨졌다.

 

하산하면서 조심스레 너도바람꽃과 만났다. 야생화에 빠졌던 초기와 달리 이젠 꽃사진에 그닥 욕심이 없다. 인연이 되면 만날 뿐, 안달하지는 않는다. 여기 너도바람꽃은 인간의 손길을 너무 타고 있다. 지나치게 귀여워하는 것도 병통이다. 조만간 사라지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