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울산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었다. 먼 거리를 가면서 고작 결혼식만 달랑 참석하고 돌아오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부산에 있는 친구도 만나보고, 황매산 철쭉도 구경하고, 주변의 나무도 찾아보기로 했다. 2박3일 일정의 동선이 마련되었다.
아침 7시 30분에 집을 나섰는데 5시간이 걸려 울산에 도착했다. 사월 초파일이 들어간 사흘 황금연휴의 딱 중간 날이었다. 어렸을 때는 이웃에서 함께 자란 고종사촌들인데 이젠 각자 일가를 이루고 먼 곳에 흩어져 산다. 오랜만에 만나서 듣는 사연에는 세월의 신산함이 묻어 있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범어사에 들러 연등을 구경했다. 마침 저녁때라 연등에 환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범어사 앞 모텔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오전에 부산에 있는 한 교회에서 사목을 하는 친구를 찾아갔다. 마침 주일이어서 친구가 설교하는 예배에 참석했다. 그간 교회 홈피를 통해 친구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있었지만 직접 대면하는 건 38년 만이었다. 멀리서 친구를 바라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대학 시절 친구는 기독학생회장을 하는 등 신앙에 열정적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아 번민하던 나를 교회로 인도한 것도 친구였다. 우리 둘은 전공 공부를 때려치우고 엉뚱한 데에다 대학 시절을 보냈다. 졸업하고는 서로 소식이 끊어졌고, 목사가 되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소재가 파악된 것은 이태 전이었다.
친구한테서는 청년 시절의 풋풋했던 냄새가 나서 좋았다. 우리는 금방 스무 살 옛날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마 나도 신학을 계속 공부했다면 친구처럼 목회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친구는 교원자격증도 박탈당하고 교회 일을 돕다가 서른이 넘어서야 신학대학에 들어갔다고 한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안 가 본 길을 아쉽게 바라본다.
마침 친구가 제일 바쁜 주일이어서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미리 약속도 하지 않고 불쑥 찾았던 터였다. 첫눈에 알아보고 환호하던 친구의 모습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개신교 예배에 굉장히 오랜만에 참석했는데 예배 형식이나 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달라서 놀랐다. 자유롭고 활기찼으며 친교의 시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특히 헌금 시간이 따로 없이 예배 전에 미리 봉헌하는 게 파격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예배 분위기가 친구를 닮아선지 차분하고 진지했다. 기독교TV에서 자주 접하던 부정적 이미지가 전혀 없었다. 개신교도 많이 변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군데 나무를 찾아본 후 의령에서 일박을 했다. 곽재우 생가를 찾았던 터라 황매산에 가까운 곳이 의령이었다. 시간이 남아 걸어서 의령읍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여행의 묘미는 낯선 장소에 혼자 있게 된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낯설어지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군청 앞에 있는 종로식당에서 소주를 반주로 국밥으로 저녁을 했다. 소주 한 병이 들어가니 이방인의 마음이 눈 녹듯 풀어졌다. 예술가란 항상 술에 적당히 들떠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해 지는 의령 거리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마지막 날 일정으로 황매산을 찾아갔다. 차로 철쭉 군락지까지 올라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철쭉 축제 중이라 월요일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철쭉은 절정을 지나 지고 있었지만 우리나라 대표 철쭉지답게 장관이었다. 그러나 가장 철쭉이 아름다운 능선에서는 구름이 잔뜩 끼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아쉬웠다.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포기했다.
이번 여행은 결혼식에 참석하고, 옛 친구를 만나고, 산을 찾아 꽃을 보고, 그리고 여러 나무를 만났던 퓨전 여행이었다. 만난 나무는 순서대로 구량리 은행나무, 신전리 이팝나무, 범어사 등나무 군락, 범어사 반송, 좌수영지 푸조나무, 좌수영지 곰솔, 백곡리 감나무, 성황리 소나무, 세간리 현고수, 세간리 은행나무, 오도리 이팝나무였다. 집에 돌아오니 자동차 거리계에는 1,000km가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