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선생의 산문집이다.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다. 선생의 표현대로라면 낮은 이성의 시간이고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시간이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잃어버린 밤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한 일임을 믿기에 이런 제목을 달았을 것이다. 낮에 잃은 것을 밤에 찾기란 곧 인문 정신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밤이 선생이다>는 한겨레신문에 실었던 칼럼을 중심으로 선생이 쓴 글을 모았다. 진보적 지식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확인할 수 있다. 시사성 짙은 글들이 많은데 현실에 비판적이지만 과하지 않고 따스하다. 좀 더 나은 세상,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염원하는 그리움이 담겨 있다.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개발 시대에 들기 전의 농어촌은 인간다운 삶의 원형으로 기억되기에 더욱 향수를 자극한다.
선생은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는데 문학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미술 영화 사진 등 여러 방면으로 조예가 깊은 것 같다. 책 2부에는 구본창과 강운구 사진에 대한 감상평이 실려 있는데 사진 독법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 장의 사진에서 개인의 경험에서 유래한 많은 이야기가 실타래 풀리듯 나온다. 사진에 찍힌 소품 하나까지 의미를 띄고 생생히 살아난다. 상상력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예술 작품은 보는 사람에 의해서 재탄생한다.
소개된 사진 중에 저녁 무렵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아낙과 소년을 찍은 게 있다. 똑바로 걷는 사람과 달리 개 한 마리가 길 밖으로 벗어나고 싶은 듯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 개가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구나, 정도의 느낌만 받았는데 선생은 달랐다. 사람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이 겨울의 개를 통해 선생은 예술 정신을 읽는다. 아, 하고 무릎을 쳤지만 이 정도 깊이로 사진을 읽기 위해서는 얼마나 진지하게 사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그러나 생각이나 진지함이 없으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고 형태를 만드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글쓰기란 곧 생각하는 것이고, 생각을 통해 모든 것은 의미를 띄고 우리와 연결된다.
선생이 서문에 쓴 것처럼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특별한 게 아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 상식이 통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다. 모든 생명이 어우러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다. 천년 전에도, 수수만년 전에도, 사람들이 꾸었을 이 꿈을 아직도 우리는 안타깝게 꾸고 있다. 당연해야 할 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 인간의 자리에 돈이 들어앉은 이 시대가 슬프다. 꽃봉오리를 피우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어린 생명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