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특이점이 온다

샌. 2014. 7. 28. 12:33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담고 있는 내용도 그만큼 충격적이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이만큼 과학적이고 구체적으로 분석한 책도 드물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진화가 인류를 어떻게 변모시킬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해 준다.

 

특이점이란 미래에 기술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그 영향이 깊어서 인간의 생활이 되돌릴 수 없도록 변화되는 시기를 말한다. 블랙홀에서 사건의 지평선이 물질과 에너지를 끌어당기며 그 패턴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특이점은 생물학적 사고 및 존재와 기술이 융합해 이룬 절정으로서, 생물학적 근원을 훌쩍 뛰어넘은 세계를 탄생시킬 것이다. 특이점 이후에는 인간과 기계 사이에, 물리적 현실과 가상현실 사이에 구분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특이점이 임박한 시기에 살고 있다. 지은이는 특이점이 2045년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지은이가 그리는 특이점 이후의 세계는 인간의 지력으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지금은 세 가지 혁명이 동시에 진행중이다. 유전학(Genetics), 나노기술(Nanotechnology), 로봇공학(Robotics)의 혁명이다. 이 셋의 정점에 기계와 인간이 결합한 인공지능[AI]이 있다. 초지능을 가진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것이다.

 

앞으로 인간 뇌를 스캔하여 작동 원리를 알아내면 AI의 탄생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2020년대 중반이 되면 정교한 뇌 모델들을 갖게 될 것이고 스스로 학습 능력을 갖춘 AI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기계로 대체된 인체는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게 되고, 생존이나 죽음, 음식, 섹스 등 인간 활동에 관계된 모든 개념이 변할 것이다. 업로드된 뇌는 다양한 육체의 옷을 입으며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초지능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뇌를 스캔해서 생물학적 뇌보다 훨씬 강력한 다른 연산 기판에다 옮기는 게 뇌 업로드다. 지은이는 2030년대 말이면 가능할 것이라 예상한다. 현재 우리 몸은 하드웨어가 망가지면 소프트웨어, 즉 우리의 삶, 우리의 개인적 '마음 파일들'도 함께 죽어버린다. 하지만 앞으로는 뇌 속에 패턴을 이루며 들어 있는 수천조 바이트의 정보가 고스란히 다른 곳에 저장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라는 소프트웨어는 인체와 시간의 한계를 넘어 무한히 확장된다. 인간은 웹에서 사는 것이다. 필요가 있거나 원할 때만 육체를 가진다. 다양한 가상현실에서 가상 육체를 가질 수도 있고 나노봇의 도움으로 구성된 물리적 육체도 가질 수 있다.

 

가까운 장래에 나노봇 수십억 개가 몸과 뇌의 혈류를 타고 흐르며 병원체를 물리치고, DNA 오류를 수정하고. 독소를 제거하는 등 육체적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여러 임무들을 수행할 것이다. 우리는 늙지 않고 무한히 살 수 있다. 뇌에 있는 나노봇들은 기존의 생물학적 뉴런과 상호작용해서 완전몰입형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해줄 것이고, 신경계 내부로부터 작업을 해서 감정을 유발시키기도 할 것이다. 타고난 생물학적 사고 장치와 우리가 만들어낸 비생물학적 지능이 융합됨으로써 인간의 지능은 엄청나게 확장된다.

 

미래의 특징 중 하나가 가상현실이다. 우리가 가상현실로 들어가겠다고 하면 혈관이나 신경계 속에 들어 있는 나노봇들은 실제 감각 기관에서 오는 입력 신호를 차단하고, 가상 환경을 구성할 새로운 신호들로 대체해 준다. 뇌는 이 신호들이 인체에서 직접 입력되는 양 생생히 느낄 것이다. 웹을 통해 우리는 그야말로 다양한 가상 환경을 누비며 온갖 체험을 하게 된다. 실제 장소를 재현한 가상 환경도,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환상의 공간도 가능하다. 가상 공간 속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 사업을 의논하거나 감각적 체험을 공유할 텐데, 진짜 사람도 있겠지만 가상의 행위자도 있을 것이다. 둘 사이를 구분할 방법은 없다. 강력한 AI와 나노기술로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상품, 상황, 환경이라도 마음대로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래서 21세기 중반이 되면 인간은 무한히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된다. 일종의 불멸이다. 영원히 살아있으며 서서히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불멸의 존재란 인간이라는 소프트웨어의 패턴이다. 지구 상의, 그리고 지구를 둘러싼 지능은 기하급수적 확장을 거듭하여 결국에는 지능적 연산을 뒷받침할 물질과 에너지가 모자라는 순간에 다다를 것이다. 그렇게 우리 은하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고 나면 인간 문명의 지능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더 먼 우주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미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충격적이고 어마어마하다. 그런 세상에서도 인간성이라는 게 남아 있을지 우선 의심된다. 지은이는 상당히 낙관주의자여서 어떠한 변화도 우주 질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판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우리의 삶과 일, 세상에 대한 인식을 통째로 뒤흔들어놓을 혁명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의 예견대로라면 내 생전에 특이점을 만날 수도 있다.

 

이 책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는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썼다. 그는 자신을 특이점주의자라 부른다. 특이점주의자는 특이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의미를 자신의 삶에 반추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끝없이 발전해가는 우주의 진화를 믿는다. 우주는 무한한 지식, 무한한 지능, 무한한 아름다움, 무한한 창의성, 무한한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모든 것은 특이점으로 수렴되고 그 뒤에서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SF보다 몇 만 배나 더 기묘한 세계다. 우주의 진화는 이미 길이 정해진 듯 보인다. 믿을 수 없지만 믿지 않을 수 없는, 가슴 두근거리며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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