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샌. 2014. 11. 9. 10:46

배 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유는 엉뚱했다. 해 뜨고 지는 풍경을 실컷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런 얘기를 했더니 가당찮은 얼굴로 보는 것이었다. "야, 일하다 보면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른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아마 한 달 동안 원양어선에서 생활한다면 나 역시 비슷한 말을 할 게 틀림없다. 한 달이 아니라 일주일만 지나도 시들해질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일상이 되면 무감각해진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가 거기에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에 무릎을 쳤다. 대상이 무엇이든 딱 사흘만 우리에게 허락된다면 아름답고 귀하지 않은 게 있을까. 지루하기만 한 오늘도 반짝반짝 빛나게 될 것이고, 아내의 잔소리마저 꾀꼬리의 지저귐으로 변할 것이다. 바람의 향기를 조금이라도 더 맛보려 할 것이고, 하찮은 들꽃도 보석으로 보일 것이다.

 

가족에게 무덤덤한 것도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만약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사흘만 주어진다면 가족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집, 동네, 직장, 모든 게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는 것이야말로 제일 두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건 무감동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통해 생의 환희를 느끼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경탄은 이미 이 자리에 주어져 있다. 만일 선입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다면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늘 처음처럼 가슴 두근거리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다. 무엇이든 신기해서 물어보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드물긴 하지만 없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은 새벽에 깨어나는 세상을 보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대문을 나선다. 늘 가는 길, 마주치는 사물이지만 그는 처음 만나는 것처럼 인사한다. 골목의 작은 돌멩이에게, 이제 막 깨어나는 꽃에게....

 

인생의 고수는 밖에서 찾지 않고 자기 삶의 자리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반짝이는 보석을 찾아내곤 즐거워한다. 비루하고 누추하고 지루한 일상은 없다. 오늘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가 거기에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다. 지상에서의 삶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지상에 머무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무한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것이 우리의 빛나는 삶을 시들하게 만드는 원인인지 모른다. 파리에 살면서도 파리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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