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중계를 볼 때 "결대로 밀어쳐서 좋은 안타가 되었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결대로 밀어친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알 것이다. 바깥으로 들어오는 공을 억지로 당기지 않고 부드럽게 갖다 맞히는 걸 말한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움직이는 야구공에 '결'이 있다는 표현이 참 좋다.
'결'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무, 돌, 살갗, 비단 따위의 조직이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라고 적혀 있다. 모든 사물에는 고유한 결이 있다. 나무의 결은 나이테고, 물의 결은 물결이다. 살결도 있고 비단결도 있다. 그런데 야구공을 결대로 밀어쳤다는 것은 공 자체가 아니라 운동할 때 나타나는 특징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결도 있는 것이다.
이 '결'이라는 말이 좋다. 사람의 마음에도 결이 있다. 마음결이 비단 같다는 말은 흔히 쓴다. 내 마음을 이루는 무늬가 있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만약 사람의 마음결을 볼 수 있다면 얼굴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를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 나오는 옷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결에는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하나의 무늬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보다 훨씬 더 다양하며 다채로운 색깔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결이다.
마음결은 정적이 아니라 동적이다. 끊임없이 변하고 흐르는 패턴이다. 이 마음결은 무늬에 알맞은 에너지를 파동의 형태로 방사한다. 움직이는 전하가 전자기파를 생성하는 원리와 같다. 사람의 고유한 파동은 마음결에서 나온다. 비슷한 패턴이 만나면 인력이 작용하고, 상반되는 패턴이 만나면 척력이 작용한다. 한눈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모두 마음결이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 탓이다. 물리 용어인 간섭이나 공명을 이런 마음 작용에 원용해 볼 수 있다.
결이 가지는 에너지를 동양에서는 기(氣)라고 불렀다. 좋은 바탕에서는 좋은 기가 나오고, 나쁜 바탕에서는 나쁜 기가 나온다. 아마 감기(感氣)는 외부의 나쁜 기운이 내 몸 안으로 침투된 것을 느꼈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서양 과학이 인체나 우주를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관점이다. 우주는 물질만이 아니라 과학 기구에 의해서 관찰되거나 측정되지 않는 영역도 존재한다. 물질은 우주 구성 요소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주는 파동이거나 아니면 홀로그램 같은 어떤 패턴이 아닐까. 각 존재의 패턴이 모여 우주의 패턴을 만든다. 우리는 우주 패턴이라는 거대한 무늬 속의 한 부분이다. 그렇지만 개별적 패턴이란 없다. 우리는 전체의 한 부분이면서 전체이며, 전체가 곧 나다. 내 마음결이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이나 상태가 고유한 결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무척 아름답다. 날아가는 야구공의 결은 어떤 것일까? 당신의 마음결과 내 마음결이 만나면 어떤 무늬를 만들어 낼까?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무수한 결들이 만나고 부딪치고 반짝이는 풍경을, 우주는 마치 오로라처럼 아름답게 빛나면서 춤추는 그림으로 변한다. 실재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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