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세월호

샌. 2014. 9. 18. 08:39

4월 16일은 온 나라를 슬픔에 잠기고 분노에 떨게 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고 나라를 혁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리고 다섯 달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진상조사위원회 하나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해경을 해체하는 등 국가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어떻게 진행되는지 감감무소식이다. 중요한 건 잘못된 국가 체제를 뜯어고치는 것인데 곁다리로만 변죽을 울리고 정작 핵심은 회피하고 있다. 엉뚱한 한 사람을 잡는다고 헛발질만 하면서 국민의 관심을 교묘하게 따돌린 꼴이 되었다. 이젠 세월호 피로증까지 언급하니 세상 변화에 대한 기대는 물 건너갔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줄을 서서 분향소를 참배하며 흘린 눈물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냄비 근성이라고 우리 국민성을 표현하는데 이 경우에도 들어맞는 것 같다. 즉흥적인 반응만 있을 뿐, 깊이가 없다. 눈물과 분노가 좋은 세상 만들기 운동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반짝 하는 감정의 흥분 상태로 끝나고 말았다. 어떻더라는 뒷담화에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이고 국가에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정치권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이번에는 밑에서부터 용솟음치는 변화의 함성이 터져나올 줄 알았다.

 

다른 무엇보다 진실 규명이 우선이다. 유가족을 위로하는 최선의 방법도 이것이다. 그래야 국가 개조 논의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진실을 밝히는 방법을 가지고 벌써 몇 달째 싸움만 벌이고 있으니 국민은 피로감을 느끼고 이젠 고개를 돌린다.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일부 과격한 유가족의 행동을 문제 삼아 정당한 요구마저 싸잡아 비난한다. 그러는 통에 국가 개혁이라는 본질은 멀리 차버린 꼴이 되고 있다. 기득권 세력은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지, 라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 전에 정년퇴직한 친구를 환영하는 대학 동기들 모임이 있었다. 식사 자리에서 세월호 얘기가 나왔는데, 단순한 교통사고를 가지고 너무 소란을 부린다는 불평이 있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도 전부 동의하는 것이었다. 종편 TV에 나오는 가십 수준의 내용을 가지고 대단한 소식이라도 되는 양 큰소리를 치는 게 꼴불견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보수로 기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참사를 유발한 우리 사회의 허위와 부조리에 대한 비판 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냥 이대로가 좋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을 바꾼다고 하면 우선 내 밥그릇을 누가 빼앗아가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한다.

 

아직 시신을 다 수습한 것도 아니고 세월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수장된 영혼들을 위해 애도하는 기간이고 남은 우리가 무엇을 할지 숙고해야 할 때다. 그런데 세상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유족을 폄하하는 발언이나 행동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다. 친구들의 입에서조차 이젠 보기 싫다, 라는 말도 듣는다. 인간으로서 차마 못할 짓이다. 차라리 침묵하는 게 그나마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것이다.

 

영악한 깍쟁이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될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세상의 부조리에는 눈을 감는다.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무지한 바보도 있다. 이들은 바람이 불면 눕는 풀처럼 체제의 선전에 세뇌된 불쌍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누구에게 조종되고 길들여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야비한 건 영악한 깍쟁이다. 인간의 이기성을 생각할 때 그들이 기득권을 지키려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던져진 큰 화두다. 무려 304명의 생명이 물 속에 버려졌다.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병폐와 모순이 한꺼번에 드러난 비극적 참사다. 생명을 경시하고 물질에 중독된 우리의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인 사고다. 배가 침몰하기까지 몇 시간동안 배 안에 있는 사람을 한 사람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일차적으로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사람에게는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존중받는 행복한 세상이 되도록 국가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온 역량을 쏟아부어도 마땅찮을 판에 국론은 분열되고 싸움판으로 변했다. 광화문 농성장 옆에서는 맞불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국가 개조를 위한 담론이 무성해야 할 때다. 그러나 사태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부는 또 다시 민생과 먹고사니즘을 들먹이며 세월호에 대한 관심을 대중에게서 앗아가려 한다. 그러나 국가 혁신만큼 민생에 직접 관계된 것도 없다. 사회가 불안하고 살기 힘들어진 것은 근본적으로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다.

 

세월호의 비극보다도 그 뒤에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뒤처리 수순에 절망한다. 우리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슬프다. 세상의 비극을 막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더 나은 삶의 모습으로 승화시키는 건 남아 있는 자의 몫이며 의무다. 현실을 보면 우리에게 과연 그런 능력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홍익이 아니라 각자도생의 이기성만 판친다.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이며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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