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동물의 왕국

샌. 2014. 8. 24. 07:55

옆자리 동료는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아이들을 짐승에 비유하는 말을 자주 했다. 수업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런 우스갯소리로 푼 것이다. 동료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기에 아무도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병상련으로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말도 너무 자주 들으면 식상하는 법인데, 한번은 이렇게 대꾸해 준 적이 있었다. "세상이 동물로 우글거리니 아이들도 동물이 되는 거야."

 

아이들의 심성이 고약해져가는 걸 아이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세상이 썩었는데 아이들이 순수하기를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교육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정의 건강이 특히 중요하다. 가정이 병들면 아이의 마음도 병들게 된다. 교사라면 문제 학생 뒤에 문제 가정이 있다는 걸 잘 안다. 물신주의, 이기주의라는 전염병이 가정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

 

오도된 가치관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게 만든다. 요사이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그러기도 하지만 뭘 잘못했는지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가정 폭력을 보고 자란 아이는 친구에게 주먹을 휘둘러도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결혼해서 배우자에게 하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아마 다들 그렇게 산다고 믿을 것이다. 나아가 불의가 판치고 정직하면 손해 보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본받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무리 응급 처방전을 써도 근본이 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뿌리가 썩었는데 잎에다 약을 뿌린다고 나무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대책이란 게 피상적인 것뿐이다. 안에서 상처는 곪아가는데 환부를 도려낼 생각은 안 한다. 이래서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험한 세상을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개인의 병리 현상이 자주 나타나면 사회가 그만큼 병 들었다는 신호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세상이 앓는 신음으로 들린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병들고 썩어 있다. 동네 의원 수준으로는 이미 치료하기 힘들다. 이런 상태에서 학교 교육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아프리카 초원의 먹고 먹히는 동물 세계를 TV로 보면서 우리는 눈을 감는다. 그러나 온갖 술수와 사기와 거짓말, 살인과 전쟁이 난무하는 인간 세상이 저 동물의 왕국보다 훨씬 더 잔인무도하다. 털 없는 원숭이는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동물이다.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인간의 그런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 인간이 환경을 만들지만, 또한 그 환경에 의해 인간은 만들어진다. 동물의 왕국에서 인간의 나라로 가는 길이 멀고도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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