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분노 사회

샌. 2014. 11. 28. 12:18

며칠 전 일이다. 집 앞 도로에서 좌회전 신호가 끝날 때쯤에 느릿느릿 좌회전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차선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서 창문을 열고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왜 날 보고 그러는지 어리둥절했다. 집 앞의 워낙 한가한 도로라 그 차와 내 차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상시에는 황색등만 점멸하다가 출퇴근 때에만 잠시 신호등이 들어오는 도로다. 요지는 내가 신호를 어기고 좌회전을 해서 자기 갈 길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충돌 위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차는 움직이지도 않은 상태였다. 설사 잘못을 했더라도 그렇게까지 쌍욕을 들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길거리에 나가 보면 이런 상황을 비일비재하게 겪는다. 사람들이 전부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것 같다. 불만과 분노로 가득하다. 어른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까지 전염되어 있다. 교실에서도 심통 부리는 아이들이 대단히 많다. 단순히 사춘기의 반항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깊이 병들어 있는 신호로 나에게는 감지된다. 이러다가 나라 전체가 괴멸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걱정도 든다.

 

분노의 배경에는 소외감과 피해 의식이 한몫을 하고 있다. 승자독식 사회에서 생기는 당연한 결과다. 대부분의 사람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최대한 자기 몫을 챙기려 한다. 없는 자들이 있는 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증오, 열등감, 시기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내면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떤 계기를 만나면 폭발한다. 화는 참으면 참을수록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러다가 작은 자극에도 펑, 하고 터진다.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분노가 사회와 제도의 불의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와 관용의 대상이어야 할 이웃으로 향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부모한테 야단맞고는 애꿎은 개를 걷어차듯이 함께 연대하고 싸워가야 할 사회적 약자에게 화풀이한다. 저희끼리 치고받고 하는 싸움을 위에서는 흐뭇하게 바라볼지 모른다.

 

옛날에 비한다면 경제적으로는 엄청나게 잘살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 마음도 그만큼 성숙하고 여유 있고 행복할까? 결코 아니다. 조직이나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개선된 건 사실이지만, 착취와 예속의 구조 또한 지능적으로 변했다. 잘살게 되었어도 숨 쉴 틈이 없다. 특히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세상이다. 자립적 사고를 길러주지 않았으니 젊음의 에너지는 쓸 데 없는 데 낭비되고 있다. 안까타운 일이다.

 

원래 분노는 사회를 혁명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조무래기 분노들만 모래알처럼 들끓고 있다. 자기중심적인 흩어진 분노는 세상을 바꿀 아무 힘이 없다. 이들을 모아 더 높은 가치로 승화시킬 담론은 어디에 있는가? 그저 화를 품은 채 세상 굴러가는 대로 지켜보고 따라가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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