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이나 도서관의 과학 코너에 있는 책의 저자는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가뭄에 콩 나듯 국내 저자의 이름이 보인다. 기초 과학 분야에서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 책 <다윈의 식탁>이 반갑다. 진화생물학자인 장대익 선생이 썼다. 현대 진화론의 쟁점이 무엇인지 맛깔난 식탁에 차렸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알차서 좋다.
2002년 진화생물학자인 해밀턴 박사의 장례식에 세계의 유명한 생물학자들이 모인다. 도킨스와 굴드를 수장으로 하는 일주일간의 토론회가 즉석에서 열린다. 명칭은 '다윈의 식탁'이고 토론 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날: 자연선택의 힘(강간도 적응인가)
둘째 날: 협도의 진화(이기적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셋째 날: 유전자와 환경 그리고 발생(유전자에 관한 진실을 찾아서)
넷째 날: 진화의 속도와 양상(진화는 100미터 경주인가, 멀리뛰기인가?)
다섯째 날: 진화와 진보(박테이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여섯째 날: 진화론의 계보(진화론의 나무 아래서)
마지막 날: 진화론과 종교(다윈의 진정한 후예는?)
다윈의 진화론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중등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진화론에 대해 정확히 아는 건 아니다. 혹,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고 말하는 정도는 아닐까. 다윈은 생물종의 변화를 이끄는 힘을 자연선택이라고 했고, 자연선택 매커니즘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고 봤다.
1. 모든 생명체는 실제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자손을 낳는다.
2. 같은 종에 속하는 개체들이라도 저마다 다른 형질을 갖는다.
3. 특정 형질을 가진 개체가 다른 개체들에 비해 환경에 더 적합하다.
4. 그 형질 중 적어도 일부는 자손에게 전달된다.
진화론이 아름다운 건 자연선택이라는 단순한 원리로 생물 세계의 다양성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작은 변화라도 누적되면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엄청나고 화려한 세계가 만들어진다. 물론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견이 생길 수 있다. 이 책은 진화학자들이 펼치는 흥미로운 논쟁의 식탁이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눈 먼 시계공>, <만들어진 신>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오래 되었지만 인간 조차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라는 설명을 충격으로 받아들인 느낌이 새롭다. 최근에 도킨스는 종교를 '정신의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종교 제거 활동에 적극적이다. 과격하긴 하지만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점도 많다. 도킨스의 팬이 많은 이유다.
반면에 굴드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서 진화론의 쟁점에서는 도킨스와 대척점에 서 있는 생물학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굴드는 반점진론, 반적응주의, 반진보주의, 종교 반제거론자라 할 수 있다. 종교 문제에서는 도킨스와 달리 종교와 과학이 서로 다른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거나 대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굴드의 학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진화를 진보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이 복잡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며, 생명의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변이량(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38억 년 전에 비해 지금이 생물 종의 다양성 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지만 그걸 진보의 추세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에 도킨스는 비가역적인 방법으로 진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 역사가 진보하고 있느냐는 논란과 비슷하다.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윈의 식탁>에는 현대 진화론의 여러 이론이 풍성한 만찬으로 차려져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다윈부터 현대에 이르는 진화론의 지형도가 어느 정도 그려질 것이다. 교양 과학서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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