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신문 없는 한 달

샌. 2011. 5. 22. 08:56

신문 없이 한 달 넘게 지내고 있다. 이사를 하고 난 뒤 새로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잠잤던 자리에 그대로 누워 배달된 신물을 보는 게 정해진 일과였다. 퇴직한 뒤로는 더 시간 여유가 있어 느긋하게 신문을 읽는 시간이 행복했다. 다른 사람들은 한창 출근에 바쁠 시간에 나만의 특별한 호사를 누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아이들이 떠나고 집에 둘만 남게 되면 아무래도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지게 되는데 현관 앞에 쌓이는 신문을 처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몇 주씩 신문이 쌓여있는 모습으로, 이 집에는 사람이 없소, 하고 일부러 광고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매번 옆집에 부탁하기도 어렵다. 마땅한 방법이 없는 한 이젠 신문을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신문과 함께 한 기간이 오래 되었다. 고등학생 때 서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처음 본 신문이 동아일보였다. 그때 동아일보는 지금과 달리 박정희 독재에 저항하던 신문이었다. 당시에는 과학에 관심이 많아 아폴로 달 착륙 기사를 스크랩한 파일이 지금도 남아 있다. 심지어는 군대 있을 때도 신문과 떨어지지 않았다. 사단 행정병으로 있었던 탓에 사무실로 배달되는 신문을 매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신문과의 인연이 40년 넘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셈이다.

그런 신문을 한 달간 접하지 못하니 답답하고 허전하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과 함께 생활의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영화나 책에 관한 정보는 대개 신문에서 얻었다. 인터넷과 TV가 있지만 신문의 역할을 대신하진 못한다. 마지막에 본 신문이 경향신문이었는데 책을 비중 있게 소개해 주는 점이 좋았다. 경향의 칼럼도 좋아했다. 지금은 가끔 인터넷으로 들어가 읽어보지만 종이 신문의 느낌이 나지 않아 느낌이 훨씬 덜하다.

어제는 병원에 간 길에 로비에 있는 신문을 읽었다. 마침 경향신문이 있었는데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냄새도 킁킁 맡아 보았다. 이런 걸 보면 난 아직 아날로그 세대인 게 맞다. 그러나 이젠 신문 없는 생활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언젠가는 너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허전한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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