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행복의 조건이 '삼관'이라고 한다. 삼관은 관절, 관계, 관심거리다. 즉, 튼튼한 관절, 원활한 대인관계, 즐거운 관심거리가 있어야 노년의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관절이 튼튼하다는 건 본인이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다는 걸 뜻하니 넓게 말하면 건강하다는 뜻이다. 관절에 이상이 없어도 병석에 누워 있다면 아무 소용 없다. 어느 경우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즐거움의 반은 포기한 셈이다. 나는 특히 걷기와 산을 좋아하니 행복의 조건으로 관절을 드는 데 주저함이 없다. 가고 싶은 산을 다리 때문에 못 간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불행해질 것 같다.
그래서 미래를 위하여 산길을 걸을 때는 조심한다. 특히 내려갈 때는 발을 세게 디디지 않도록 한다. 스틱이 없더라도 주의만 한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걸 지난번 일본 트레킹에서 확인했다. 해발 1,300m에 있는 조몬스기를 보러 간 길은 왕복 21km에 11시간이나 걸렸다. 나만 스틱이 없었지만 오히려 더 조심하게 되고 큰 문제는 없었다.
여든 중반이 되신 어머니는 아직 밭일을 하실 정도로 관절이 건강한 편이다. 허리가 굽고 다리도 아프셔서 자주 병원에 다니시지만 비슷한 연세의 다른 분에 비하면 아주 우수하다. 백수를 하신 외할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다리는 정정하셨다. 나도 다리만은 꼭 모계를 닮고 싶다.
대인관계에서는 나는 많이 부족하다.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홀로 있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데, 그 원인도 알고 보면 관계가 서툴기 때문이다. 불편한 걸 굳이 새롭게 시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만들려면 도리어 마찰음만 난다. 욕심부리지 말고 지금 있는 좁은 관계나마 유지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관심거리도 다양하지 못하다. 책 읽고, 블로그에 글 쓰고, 바둑 두길 좋아하는 정도다. 정적인 취미다. 그래도 나는 만족한다. 관계나 관심은 자족하는 수준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남과 비교할 이유가 없다. 화려한 취미를 가진 사람은 그 나름대로 즐겁게 살 것이다. 무미건조해 보이는 취미에도 역시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다. 겉으로 초라해 보이는 것이 오히려 깊이는 더 있는 게 아닐까. 내 변명이다.
바람이 있다면 삼관 중에서 관절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이 지상에 살아 있는 날까지 내 다리로 걷고 싶다. 다른 것은 별로 탐나지 않는다. 늙어서는 돈도 명예도 아니다. 결국은 관절의 건강이 인생의 승자가 되는 게 아닐까. 그때는 다리 하나만으로 부러움의 시선을 받을 것이다. 물론 똘똘한 정신이 받쳐줘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