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60이 넘어도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 건 어떨까? 얼마 전의 일이다.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앞에 앉은 사람이 나한테 귀엽다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어리벙벙했지만 반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피식 웃기만 했다. 그분은 형님뻘이니 그나마 다행이다. 전에 학교에 있을 때는 코흘리개 아이들한테서도 그런 소리를 가끔 들었다. 웃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난감했다.
'귀엽다'는 내 평생을 따라다니는 단어다. 어렸을 때는 은근히 자랑스러웠지만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너무 창피하게 느껴졌다. 뭔가 모자라고 덜 떨어진 인간이 된 듯하여 주눅 들기 일쑤였다. 하물며 어른이 되어서는 오죽하겠는가. '멋있다'거나 '남자답다'는 말은 나에게는 멀어도 너무 멀었다. 그런데 단 한 번 예외가 있었다. 한 친구로부터 살짝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그를 무척 좋아하게 된 건 물론이었다.
대개 동물의 어린 새끼를 귀엽다고 한다. 아기도 마찬가지다. 아직 미성숙한 상태로 생명의 원형이 살아 있을 때 그런 표현을 쓴다. 대신에 연약하고 독립적이지 못하다.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동물은 귀여운 단계를 지나서 성체로 성장한다. 평생 귀엽다면 문제가 있다. 엄마에게 맘마보이는 늘 귀여운 존재인지 모른다.
그러나 다르게 해석해 볼 수도 있다. 귀엽다는 말은 세상의 고정관념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정신을 가리킬 수도 있다.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지만, 위엄을 덜 부리고, 권위의식을 덜어낼 때 사람의 향기가 난다. 적어도 꼰대는 아니라는 말이다. 늙으면 어린아이로 돌아간다고 한다. 귀여운 노인을 상상하면 저절로 흐뭇해진다. 귀엽다는 건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젠 귀엽다는 말을 사랑하기로 한다. 나이 들수록 귀여워지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아니, 썩 그럴듯한 일이다. 앞으로 귀엽다는 말을 들으면 "고맙습니다"라고 허리 숙여 인사를 해야겠다.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속으로 다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