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나오는 '임계장'이 직책인 줄 알았더니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이어서 씁쓰름했다. 이 책은 공기업에서 퇴직한 후 시급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조정진 씨의 노동 일지다. 그는 버스 회사 배차계, 아파트 경비원을 거쳐 빌딩 주차 관리 및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가정 형편이 그를 힘든 노동 현장으로 내몰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동네에서도 자주 마주치는 아파트 경비원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게 되었다. 피상적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딴판의 현실이 숨어 있었다. 노동의 강도만 아니라 관리사무소나 입주민 사이에 생기는 심적 갈등이 그분들을 힘들게 했다. 소수지만 어디에나 못된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만 횡포를 부리거나 갑질을 하는 건 아니다. 그들에게 임시계약직은 좋은 먹잇감인 것이다.
일터에서 작가가 경험한 조건은 어디나 비슷했다. 장시간 노동, 비인간적 대우, 비위생적 근무 환경에 시달렸다. 노무직에 공통된 현상이다. 심하게 말하면 현대판 노예 또는 일회용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고 들어올 사람은 넘쳐나는 상황에서 그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노리는 바인지 모른다.
글을 읽어보면 작가는 무척 성실한 분인 것 같다. 어디서나 열심히 일하며 긍정적으로 사고하려 한다. 그러다가 병을 얻고 몸이 망가지지만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계속 일을 해야 한다. OECD 최고의 빈곤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노년층의 비애라고 할 수 있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계급사회는 고착화되고 있다. 가진 계층은 더 풍요를 누리고, 없는 계층은 점점 가난의 수렁으로 빠진다. 부도 가난도 대물림되는 것이다. 우리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심각한 현상이다. 극우의 준동도 이와 유관하다고 생각한다. 절망에 빠진 이들은 동시대의 여성을, 민주주의를, 공화국을 타깃으로 삼는다.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이 우려스럽다. 이 역시 정-반-합이라는 역사 발전 과정의 하나로 봐야 할까.
얼마 전 서울시의회 질의 응답 과정에서 서울시장이 이렇게 말했다. "저소득층 아이들 밥 주는 건 동의했다. 저소득층 아이에게 돌아갈 것이 고소득층 자제에게 돌아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으니..." 저소득층 '아이'와 고소득층 '자제'라니, 사회 지도층의 내면 의식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듯하여 분노가 인다. 자신은 '아이'와 '자제'를 랜덤 하게 쓴다고 변명했지만 이미 우리 사회가 터닝 포인트를 지난 것이 아닌가 불안하다.
<임계장 이야기>에는 안타깝고 슬픈 사연들이 많이 나온다. 인간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책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그래도 일할 곳이 있음을 감사하며 새벽 첫차에 몸을 실었다. 아직 동트지 않은 거리로 나오는 첫차의 승객들은 항상 똑같다. 이 도시의 새벽을 깨우는 경비원 할아버지들, 미화원 할머니들이다. 매일 마주치니까 서로 얼굴을 안다. 그래도 인사를 건네지는 않는다. 내면 깊숙이 할 말은 많아도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고단함은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침묵이 곧 위로이고 말없는 응답이다."
이 땅의 모든 임계장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