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토지(13, 14)

샌. 2025. 2. 23. 10:52

4부의 시작인 이 두 권은 일본의 식민 지배가 고착화되면서 지식인들은 좌절하고 패배 감정에 젖게 되는 시기다. 처세를 위해 친일에 영합하는 부류도 많이 생겨나고, 민중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13권의 서두에서는 이때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훌륭한 개명파 지식인들, 일본을 마시고 서양서 온 기독교에 목욕한 사람들, 미신타파를 외치고 민족개조를 외치고 조선인을 계몽하려고 목이 터지는 사람들, 미신타파하면 땅을 찾고 수천 년 내려온 조선의 문화를 길바닥에 내다 버려야 땅을 찾고,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이만하면 대장부 살림살이, 대신 사탕 빨고 우동 사 먹어야 땅을 찾을 것이던가, 사실은 긴구치나 히마키를 피우는 족속, 금종이 은종이에 싼 과자 먹는 족속, 우리 것을 길바닥에 내다버리는 족속 때문에, 그들 때문에 조선 민족은 말살될지 모른다. 남부여대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 바가지 들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 지게 지고 그리운 님 기다리듯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의 신세는 마을 큰 나무에 돌 얹고 절한 때문인가 성황당에 재물 바친 때문인가 용왕을 모시고 터줏대감을 모신 때문인가, 그것을 총독부, 동척 아닌 어느 곳에 가서 물어볼꼬."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중에 그나마 큰 변화라면 길상이 감옥에서 나와 평사리로 돌아온 일이다. 길상도 어느덧 지역사회의 의젓한 유지가 되었다. 비록 일경의 감시를 받는 처지이긴 하지만. 임명희는 불행했던 조용하와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시골 학교 교사로 숨어 지낸다. 상류층 삶을 버리고 민중의 삶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다들 시대의 굴레에 갇혀 힘들게 살아가는 1930년대다. <토지>가 시작된 이후 한 세대를 건너뛴 평사리 주민들도 각자 주어진 몫의 삶을 올망졸망 살아간다. 세속적으로는 두만이가 사업으로 성공해서 진주에서 떵떵거리며 지낸다. 그러자면 친일을 해야 하고 가족들과 불화를 겪는 업보를 받아야 한다.

 

나라 읽은 설움과 고난을 대표하는 인물은 관수가 아닐까 싶다. 아버지는 동학당에 들어갔다가 싸움터에서 죽고, 어머니는 행방불명 되었다. 관수 자신은 의병과 동학당 활동을 하다가 쫓기며 독립운동에 앞장선다. 그러다가 백정집 여자를 아내로 맞고 형평운동에 참여하면서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 와중에 아들은 소식을 모르고, 딸 영선은 지리산에서 숨어 살아가는 강쇠의 아들 휘와 혼인시킨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관수는 다시 혼자의 길을 떠나간다. 그의 무대는 드넓은 중국이 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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