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영화로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책으로 읽었다. 뉴욕주에서 살던 솔로몬 노섭이라는 자유인 신분의 흑인이 있었다.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중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남부로 팔려가고, '플랫'이라는 새 이름으로 12년간 여러 주인을 거치며 끔찍한 노예 생활을 한다. 고통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탈출을 계획하던 중 백인 의인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루이지애나 주의 목화밭에서 구조되는 이야기다.
1853년에 노섭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자서전인 <노예 12년>을 써서 노예 제도의 문제점과 노예들의 비참한 실정을 고발했다.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기 10년 전이었으니 노섭의 이 책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영화로 대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 읽으니 훨씬 실감나면서 야만적인 노예 제도의 실상을 잘 알게 되었다. 백인농장주에게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값비싼 인간 가축일 뿐이었다. <노예 12년>에서 접하는 19세기 노예들이 겪은 참상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을 대한 미국의 원죄가 그리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다.
노예를 소유한 주인 중에는 선량한 사람도 간혹 있다. 노섭이 처음 만난 포드라는 농장주가 그러했다. 노예 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어느 정도는 노예를 인간적으로 대해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티비츠나 번스 같은 악랄한 인간이 대다수였다. 노예 팔자는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좌우되었다.
책에 나오는 인물 중에 '팻시'라는 여성 노예 사연이 제일 안타까웠다. 20대 초반의 그녀는 총명하고 예뻤다. 목화 따는 일도 다른 사람의 두 배나 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러나 팻시는 노예였고 오히려 더 심한 채찍질을 당했다. 주인 아내의 질투가 커질수록 팻시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렸다. 죽음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한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불행의 늪에 빠져 그녀는 완전히 마음이 죽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노섭이 구출될 때 팻시는 여전히 목화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노섭은 노예주가 잔혹한 것이 당사자의 인품보다 사회 제도의 탓이 크다고 말한다. 사람은 주변을 둘러싼 사회의 관습에 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인간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 봐야 사회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점을 지적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개인의 태도는 다르다. 노예주 중에서도 선량한 사람이 있고, 악랄한 작자도 있다. 더 나아가 노예 제도의 비인간성을 깨닫고 해방 운동에 뛰어든 백인도 있다. 사회 시스템을 비난하기보다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이유기도 하다.
<노예 12년>은 고통 받는 노예의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노예 제도의 비합리성과 인간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책이다. 동시에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인간 의지를 보여준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 자유와 번영은 전대의 수많은 인간의 피와 눈물의 결과물임을 인식한다. 인간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비참한 생을 살았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팻시'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계장 이야기 (0) | 2025.03.04 |
---|---|
토지(13, 14) (0) | 2025.02.23 |
최선의 삶 (1) | 2025.02.14 |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1) | 2025.02.11 |
토지(11, 12) (0) | 2025.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