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죽음이 찾아오면 / 메리 올리버

샌. 2025. 5. 27. 10:23

죽음이

가을의 허기진 곰처럼 찾아오면,

죽음이 찾아와 그의 지갑에 든 반짝이는 동전을 모두 꺼내

 

나를 사고, 지갑을 닫아버리면,

죽음이

호환마마처럼 찾아오면,

 

죽음이

양 어깨뼈 사이의 빙산처럼 찾아오면,

 

나는 호기심 가득 안고 그 문으로 들어서고 싶어,

저 어둠의 오두막은 어떤 곳일까? 하면서.

 

그리하여 나 모든 것들을

형제자매로 바라보지,

시간을 한낱 관념으로만 보고,

영원을 또 다른 가능성으로 여기지,

 

그리고 각각의 삶은 한 송이 꽃, 들판의

데이지처럼 흔하면서도 유일한,

 

그리고 각각의 이름은 입안의 편안한 음악,

모든 음악이 그러하듯, 침묵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각각의 몸은 용감한 사자, 그리고

땅에게 소중한 것.

 

삶이 끝날 때 나는 말하고 싶어, 평생

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

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이었노라고.

 

삶이 끝날 때, 나는

특별하고 참된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의심하고 싶지 않아.

한숨짓거나 겁에 질리거나 따져대는

나를 발견하고 싶지 않아.

 

그저 이 세상에 다녀간 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아.

 

- 죽음이 찾아오면 / 메리 올리버

 

 

죽음을 대하는 메리 올리버의 마음이 느껴진다. 시인에게는 불안이나 두려움, 지상의 것에 대한 애착이 보이지 않는다. 시인이 사랑한 자연의 한 과정으로 담담히 받아들인다. 시인에게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한 몸이었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이 시에서는 한 구절이 특별하게 가슴을 울린다.

 

"삶이 끝날 때 나는 말하고 싶어, 평생

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

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이었노라고."

 

김연수 작가의 말대로 '세상은 경이로워'라고 말하는 것과 '세상은 품에 안을 때 경이로워'라고 말하는 건 다르다. 세상을 품에 안을 때 경이롭다는 말은 경이로움이 내게 달린 문제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세상을 안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되고 '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의 의미가 각별해진다.

 

삶이 끝날 때 내 마지막 말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지는 자신 없지만 메리 올리버의 희망을 떠올리기는 할 것이다. 그만해도 다행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 / 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이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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