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반대다. 아침 일고여덟 시가 되어야 겨우 일어난다. 삼삼회에서 인왕산에 오르기로 하고 10시에 경복궁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약속을 못 지켰다. 근래 벌써 두 번째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해서 정상으로 따라가지는 못하고 대신 손쉬운 인왕산 자락길을 걸었다. 인왕산 남쪽 자락을 따라 3.2km의 길이 숲 속으로 꼬불꼬불 나 있다. 가볍게 걷기에 적당한 길이다. 산에 올랐던 일행과 끝 지점인 창의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시작점은 사직단이다. 단군성전 옆 길에는 어천절(御天節)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어천절이란 이름이 생소한데 단군이 승천한 걸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자락길은 사직단 - 단군성전 - 황학정 - 택견수련터 - 수성동계곡 - 버드나무약수터 - 구름다리 - 이빨바위 - 청운공원 - 윤동주문학관 - 창의문으로 이어진다.
윤동주는 스물일곱 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생체 실험의 희생자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자락길 끝에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옛 근무지였던 동네로 걸어가 토속촌에서 삼계탕을 했다. 값은 16,000원으로 올라 있었는데 맛은 옛날만 못 했다. 인삼주 낮술에 얼큰해졌다. 고작 10년 전인데 이곳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던가 싶게 서먹했다. 혼자 또는 함께 많이도 걸어 다녔던 길이었다. 저녁에는 다시 삼겹살과 소주에 취했다. 다시 독립문에 올 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