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저 벚꽃의 그리움으로 / 김영남

샌. 2011. 4. 17. 15:48

벚꽃 소리 없이 피어

몸이 몹시 시끄러운 이런 봄날에는

문 닫아걸고 아침도 안 먹고 누워있겠네

 

한 그리움이 더 큰 그리움을 낳게 되고...

그런 그리움을 누워서 낳아보고 앉아서 낳아보다가

마침내는 울어버리겠네 소식 끊어진 H를 생각하며

그러다가 오늘의 그리움을 어제의 그리움으로 바꾸어보고

어제의 그리움을 땅이 일어나도록 꺼내겠네 저 벚꽃처럼

 

아름답게 꺼낼 수 없다면

머리를 쥐어뜯어 꽃잎처럼 바람에 흩뿌리겠네

뿌리다가 창가로 보내겠네

 

꽃이 소리 없이 사라질까 봐

세상이 몹시 성가신 이런 봄날에는

냉장고라도 보듬고 난 그녀에게 편지를 쓰겠네

저 벚나무의 그리움으로

 

- 저 벚꽃의 그리움으로 / 김영남

 

여의도 벚꽃길에 200만이 모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창경원 벚꽃구경이 유행이었는데 이젠 여의도로 옮겨갔다. 소문난 곳에 가보면 꽃구경인지 사람구경인지 모를 정도로 북적댄다. 거기서 무슨 옛 그리움의 흔적 한 조각이라도 불러낼 수 있을까.차라리 작은 야산 속 외로운 벚나무를 찾아가고 싶다.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참이 지난 것 같았다. 봄 햇살이 눈부시고 꽃들은 화사하게 피어났다.너무 밝아 눈이 부셨다. 어떤 그리움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일까, 나는 자꾸 생각하며 슬퍼졌다. 세상이 성가시고 그걸 차마 견디지 못하는 봄날인데 꽃은 너무 예쁘고 화려하다. 안으로 문 닫아걸고 소리 없이 사라지길 기다릴까 보다. 긴 잠을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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