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 소설이랍시고 끄적거린 적이 있다. 글을 쓴 계기는 사랑의 열병 때문이었다. 서울로 유학 온 열여섯 살 시골 촌놈이 사춘기를 맞았는데 묘하게 같은 반 남학생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스 조각상처럼 멋있게 생긴 미소년이었다.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이니셜로는 JY다. J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랑은 동성애의 시기를 지나 이성에게로 향한다고 한다. 나에게는 동성에 대한 밀도가 너무 짙었다. 내성적이었던 나는 J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가까이 있으면 한 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멀리서 지켜보며 애만 태웠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니 더더욱 드러내지 못할 일이었다. J 역시 추호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짝사랑이 1년 내내 계속되었다.
학년말이 되어서 문집을 만든다고 작품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왔다. 내 답답한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사춘기의 사랑을 그린 소설을 몇 날 밤을 새워가며 썼다. 무대는 남녀공학의 교실로 설정하고,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애틋한 심정을 묘사하려고 했다. 나를 빗댄 것이었다. J가 읽고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 글은 지금 남아 있지 않고,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사라졌으니 다행이지 만약 다시 볼 수 있다면 소름 끼칠 정도로 유치했을 게 뻔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절체절명의 간절한 심정이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 내용이 어찌 됐든 글의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J를 향한 어긋난(?) 그리움이 그 뒤로 씻은 듯 사라진 것이다. 너무 표변해서 내가 놀랄 정도였다.
글의 치유 효과를 나는 그때 절절히 체험했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안 됐는데 글 한 편으로 마법을 부린 것처럼 사라졌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상관없었다.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긴 했지만 글쓰기를 통해 마음의 병이 깨끗이 나은 것이다. 그 뒤로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공개적인 글쓰기는 일기와는 다른 특별한 효과가 있다. 내밀한 고백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때 효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지금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마찬가지다. 누가 읽는지는 모르지만 여러 사람에게 공개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 여주 생활이 암초에 부딪혀 상당히 힘든 처지에 있었다. 그럴 때 블로그가 다가왔다. 아마 블로그가 아니었다면 자책의 수렁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오로지 나를 위한 글쓰기일 뿐이다. 글을 쓰고 나면 체한 뒤에 활명수를 마신 듯 시원해진다. 그것이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다.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길게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글쓰기는 책 읽기, 걷기와 함께 내 행복을 만드는 요소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새 힘을 얻고 위안을 받는다. 글쓰기는 내가 나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이다. 나를 보듬어 안는 포옹이다. 자기 만족일 뿐이어도 괜찮다. 모든 글쓰기는 거기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