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에 관심을 가진지 올해로 20년 째다. 1996년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해다. 눈을 감으면 처음 꽃을 만나던 감격이 아련히 떠오른다. 모든 게 신기하고 감동이었다. 야외로 나가는 내 손에는 김태정 선생이 쓴 <쉽게 찾는 우리 꽃>이라는 도감이 들려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야생화 교과서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세 권으로 된 그 책은 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다.
도감에 보니 '양지꽃' 페이지에 '1996. 4. 7.'이라고 적혀 있다. 처음 양지꽃을 본 날이다. 그날의 상황이 눈에 잡힐 듯 선명하다. 중학생이었던 아이들을 데리고 남한산성에 올랐다. 아내도 동행했다. 성벽 아래서 쉬고 있는데 바로 옆에 노란 꽃이 보였다. 도감을 찾아보니 양지꽃이었다. 아, 이게 양지꽃이구나, 사진으로 보던 것을 실물로 확인할 때만큼 기쁜 때도 없다. 그 뒤부터는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심드렁했다. 지금도 양지꽃을 모른다.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주든 안 주든 봄이 되면 양지꽃은 핀다. 너무나 흔하게 핀다. 그래서 주목을 못 받는다. 야생화 애호가는 대부분 귀한 꽃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뜰에 핀 양지꽃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색깔이나 모양새가 무척 예쁘다. 흔한 것은 소홀히 대하기 쉽다. 늘 옆에 있는 것의 가치를 양지꽃은 깨우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