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에 밥 묻어 놨다....
어머니, 품 팔러 새벽 이슬 차며 나가시고
막내야, 집 잘 봐라
형, 누나 학교 가고 나면 어린 나 아버지와 집 지키네
산지기 외딴집 여름해 길고
놀아줄 친구조차 없었지만 나 하나도 심심하지 않았다네
외양간에 무섭지만 형아 같은 중송아지,
마루 밑에 양은냄빈 왈칵 물어도 내 손은 잘근 씹는 검줄이,
타작 끝난 콩섶으로 들락거리던 복실꼬리 줄다람쥐,
엄마처럼 엉덩이 푸짐한 암탉도 한 마리 있었다네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세상은 한눈 팔 수 없는 곳....
원생은 나 하나뿐인 외딴 유치원, 솔뫼 고개 우리 집
아니 아니, 나 말고도 봄에 한배 내린 병아리 떼가 있었네
그렇지만 다섯살배기 나보다 훨씬 재빠르고 약았다네
병아리 쫓아, 다람쥐 쫓아 텃밭 빠대다보면,
아버지 부르시네
풍으로 떨던 아버지,
마당에 비친 처마 그림자 내다보고 점심 먹자 하시네
해가 높아졌네, 저 해 기울면 엄마가 오시겠지
- 외딴 유치원 / 반칠환
시인의 유년 시절이 그림처럼 보인다. 외딴 유치원에서 일찍 철이 든 것일까, '아아 낯설고 낯설어라, 세상은 한눈 팔 수 없는 곳'이라는 독백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친구 없어도 심심하지 않았다지만 어찌 외롭지 않았을까. 지금 50대가 넘은 사람은 강도는 달라도 대부분 공통되는 유년의 정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왠지 그리워진다. 가난하고 힘들었어도 사람살이는 그때가 더 원형에 가까웠던 게 아닐까. 부자가 되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세상이 점점 더 낯설어지는 건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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