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서른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한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처진 육신에
또 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 노동의 새벽 / 박노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는다.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의 문제로 시끄럽다. 바탕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 80년대는 민주화와 노동 운동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시기였다. 의식 있는 젊은이들은 노동 해방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이 시도 그즈음에 씌어졌다. 성장의 이면에는 이런 아픈 현실이 있었다. '얼굴 없는 시인'이라 불렸던 박노해는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노동 현장의 밑바닥을 체험했다.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던 시인이 지금은 평화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때의 시를 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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