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어 올해의 키워드를 뽑는다면 '미투'(Me Too)가 단연 으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올 초에 서지현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숨어 지내던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작년 10월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의 폭로를 계기로 연예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수십 명의 여성 배우들에게 성추행과 성폭력을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세상이 시끄럽긴 하지만 미투 운동은 인류 의식이 한 단계 진보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성이 아니라 권력이다. 권력을 이용한 갑질이 여성에게 향할 때 성희롱이나 성폭력으로 나타난다. 미투 운동은 4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과 동일선상에 있다. 또한 촛불혁명을 통해 대통령을 탄핵시킨 민중의 힘이기도 하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평등사회로 가는 거대한 물결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미투 운동이 개인의 치부만 부각시키고 우리 사회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점은 유감이다. 괴물이 생겨난 배후에는 이를 방조하고 동조한 문화가 있었다. 문제를 알면서도 기행으로 치부하거나 예술가의 멋있는 일탈 정도로 넘어갔다. 기득권이나 제도의 벽이 너무 높아 감히 도전할 수 없었던 점도 있다. 가부장적 문화가 그만큼 강고하다는 뜻이다.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 중에도 여성에 대해 권위적이고 가부장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면 똑 같은 행동을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람들 중에도 진보적 성향의 인물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지금도 노동 관련 운동을 하는 한 지인은 부인에게 엄청 권위적이어서 나를 놀라게 한다. 밖으로는 열려 있는 사람이면서 가정 내에서의 태도나 여성관은 지린내 날 정도로 고리타분하다. 그 역시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피해자일지 모른다. 이런 걸 깨뜨리지 않으면 진보의 의미는 없다.
파괴를 통해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미투 운동은 국민 의식 개조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정치 권력이든 문화 권력이든 이젠 권력을 가졌다고 감히 제멋대로 행동할 수는 없을 것이다. 권력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약자에 대한 보살핌과 배려가 없다면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옛날에는 관행이나 관습으로 하찮게 여겼던 행동이 지금은 비난 받고 죄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는 전진해 왔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피부색, 성별, 종교, 언어, 국적, 갖고 있는 의견이나 신념 등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유엔 인권선언문의 제1조는 이러하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우리 모두는 이성과 양심을 가졌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자매의 정신으로 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