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따라 3박4일로 사이판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아무 준비도 없이 따라나섰다. 둘째가 모든 계획을 짠 탓에 믿고 맡겼다. 해외여행 플랜에는 젊은이를 당할 수 없기에 간섭할 여지가 없었다.
여행의 중심은 당연히 손주였다. 따라서 오랜만에 바다에도 들어가고, 많이 웃었다. 아내는 질겁을 하지만 손주를 놀리는 재미는 모를 것이다.
사이판까지는 네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떠나기 전까지도 사이판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아무 정보 없이 떠나자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관계 없는 미국령인 것도 가서야 알았다. 크기도 자그마하다. 고구마 같이 생겼는데 길이가 긴 남북으로 종단하는 데도 30분이면 넉넉하다.
첫 이틀간의 숙소는 코아나 리조트였다. 바다에 연하고 있어 방에서 바로 열대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손주는 도착하자마자 물놀이 기구를 챙겨 바다로 나갔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주변 바닷가를 산책했다. 사이판은 어딜 가나 사람으로 붐비지 않아 좋았다.
이 나무는 카수아리나로 불리는 열대송이다. 줄기가 굉장히 굵다.
돌아오니 손주는 수영장에서 놀다가 벌에 손가락을 쏘여 울음보가 터져 있었다. 곤충만 보면 만지는 습관이 있는데, 물에 떠 있는 벌을 집어든 모양이었다. 교훈 하나를 똑똑히 얻었다.
함께 있어보니 아이는 하루에 서너 번씩은 꼭 운다. 첫날에도 공항 검색대에서 들고 있던 인형을 안 놓겠다고 울고, 비행기가 착륙할 때는 귀가 아프다고 울었다. 내 손주가 특별한가, 다른 아이 울음소리는 없었다.
저녁이 되니 수영장 주변은 원주민의 노래와 함께 바베큐 파티장이 되었다. 10시가 넘어서야 조용해졌다.
사이판에도 관광객은 중국 사람이 제일 많다. 과반은 될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 사람이고, 일본인이나 서양 사람은 의외로 적었다. 중국 사람은 금방 눈에 띈다. 남자는 웃통을 벗고 다니고, 전체적으로 소란하다. 가급적이면 중국인들 옆에 안 가려고 한다.
둘째 날 아침은 리조트 식당에서 일본 도시락을 시켰는데 먹음직했다. 사이판에 오던 날은 속이 더부룩해 힘들었는데, 하룻밤 자고 났더니 말끔해졌다.
둘째 날은 마나가하(Managaha) 섬에서 놀았다. 마나가하 섬은 사이판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미리 예약을 해 놓아 택시로 선착장까지 간 다음에 보트를 타고 섬에 들어갔다.
하늘은 잔뜩 흐렸다. 사이판은 7월부터 11월까지가 우기다. 날씨를 생각한다면 이 기간을 피하는 게 좋다. 바다에 둘러싸인 사이판 기온은 연중 26~28도 사이다. 불볕더위라는 말이 아예 없다.
마나가하 섬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
모래사장에 자리를 마련했다.
한 시간 정도 비가 뿌리더니 오후부터 날이 개였다. 바다 물놀이 하는 데는 흐린 날씨가 오히려 낫다. 맑은 날은 햇빛이 따가워 오래 노출하기가 힘들 것 같다.
스누쿨링 흉내도 내보며 산호와 열대어 구경을 실컷 했다. 열대어는 빵 부스러기 때문에 사람 주위로 몰려들었다.
햇빛이 비치니 사이판의 바다 색깔이 드러났다.
숙소로 돌아와서 또 수영장에서 손주와 놀았다. "나는 물이 좋아요!" 손주가 물놀이 가자고 조를 때 하는 말이다. 아이 엄마 아빠는 렌트카를 빌리러 갔다.
방으로 돌아오니 포즈를 지어준다.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한식당 '남대문'에서 참치회 맛을 봤다. 볶음밥도 맛있었다. 사이판 음식은 양도 푸짐하고 맛도 괜찮았다. 가격은 잘 모르지만....
신경 쓰지 않고 따라만 다니니 편했다. 손주와 잘 놀아주기만 하면 됐다. 옛날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머니나 장모님 모시고 나들이 나갔던 생각이 난다. 그 심정이 이제야 헤아려진다. 흐뭇하면서도 약간은 쓸쓸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은 잠자리가 편안해서 좋았다. 준비해 간 수면제는 전혀 소용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