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소, 돼지만 350만 마리, 오리와 닭까지 합하면 1000만에 이르는 생명이 살처분되었다. 구제역과 조류 인프루엔자에 의한 사상 최악의 재앙이 계속되고 있다. 살처분하는 현장은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한다. 돼지는 생매장을 하는데 죽고 죽이는 처참한 모습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다며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은 이렇게 적었다. "밑의 돼지들에게 갇혀 있는 큰 돼지들은 가라앉지 않으려고 더 거칠게 몸부림을 쳤다. 방수비닐의 한쪽 면이 통째로 찢겨 나갔다. 마침내 포클레인의 바가지가 웅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비닐이 찢긴 쪽 모퉁이에서부터 돼지들을 찍어내 가운데로 몇 번이고 퍼냈다. 살점이 찢기고 뼈가 부서진 돼지들의 비명소리가 웅덩이에서 공명이 되어 산속으로 퍼져 나갔다.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천 마리를 땅에 묻었다."
축산농가를 비롯해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이나 수의사들의 고통도 엄청날 것이다.소를 매장 당한 농민이 비관자살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과로로 사망한 공무원도 나왔다. 생명이 앓고 죽는 소리가 전국을 덮고 있다. 지난 번 고향에 내려갔을 때 보니 마을에서 소를 키우는 집은 몇 달째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도 그 집을 찾아가지 못한다. 감옥이 따로 없었다. 사태가 빨리 진정되었으면 좋겠다.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이번 구제역의 원인에 대해 초기 대응이 잘못되었느니, 백신 접종이 늦었느니 말들이 많지만 근원적으로는 공장식 축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육류 소비가 늘어나면서 축산업은 규모가 늘어나면서 기업형이 되었다. 가축들은 생래의 환경과 다른 가혹한 조건에서 길러진다. 외국산 사료와 항생제로 공장에서 물건 만들듯이 살아있는 제품을 생산한다.이런 데서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의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에게 단백질을 보충해준다고 고기를 먹여서 광우병을 만들었듯 이번 구제역의 대유행도 결국은 인재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면 결국 그 피해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앞으로는 생태적인 축산에 대한 요구가 상당히 거세질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축산 규모는 그 지역에서 나오는 축산 분뇨로 그 지역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정도라고 한다. 축산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육류 중심의 식습관도 바뀌어야 한다. 축산업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소비자가 바뀌면 생산 방식도 변할 수밖에 없다. 값싼 고기만 찾을 것이 아니라 가축들이 위생적이고 생태적인 환경에서 길러지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유럽에서는 달걀이나 고기의 등급을 얼마나 복지적으로 길렀느냐로 매긴다고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더욱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그런 점에서 살처분이라는 명칭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처분'이라는 말을 생명체에 쓰는 게 적절한가. 그것은 마치 사람을 '인적자원'으로 부른 것처럼 어색하다. 처분이라는 말에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처리해도 된다는 생명 경시의 차가운 느낌이 들어있다. 모든 생명은 인간과 함께 자연을 구성하는 귀한 존재다. 우리가 우리의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처분하고 말고 할 대상은 아니다. 생명에 대한 불감증이 결국은 자연마저도 인간의 이용 대상으로 본다. 4대강을 살린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포클레인으로 파헤치는 것도 우리 모두가 불감증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고향집에서는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그리고 개와 닭을 길렀다. 아마 많은 농가들이 비슷했을 것이다. 닭들은 낮에는 멋대로 돌아다니며 모이를 쪼았다. 어미닭을 따라 병아리들이 한 줄로 쪼르르 마당을 가로질러 가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인간과 가축이 순환하는 생태 고리를 만들며 자연의 질서 속에서 조화롭게 살던 때였다. 가축에서 나오는 거름으로 농사를 지었고 인간의 음식물과 들녘의 풀이 그들의 먹이였다. 가축은 한 가족이었고 그들은 원래 형질대로 건강하고 고기는 맛있었다. 어쩌다 집에서 기르던 동물을 잡게 되면 안타까워 눈물을 흘렸다. 가난하고 무지했지만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만은 살아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했다. 이 시대에 우리는 1000만의 생명들이 한꺼번에 생매장 당하는 참극을 보고 있다. 죄 없이 죽어가는 1000만의 그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외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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