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2011. 2. 28.

샌. 2011. 2. 28. 18:26

1975. 12. 1. ~ 2011. 2. 28.,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이력의 마지막 날이다. 2월 초에 퇴임인사를 했고 행정 절차도 모두 끝났기 때문에 이미 퇴직 이후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오늘이 공직생활의 종결일이다. 내일부터는 드디어 백수가 된다.

대학 동기들 몇이서 점심 먹으러 나오라는 걸 마다 했다. 왜 그런지 오늘은 그저 단촐하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낮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외출을 해서 아내와 함께 날씨에 어울리는 영화를 보고 외식을 했다. 퇴직에 대한 말은 서로 아꼈다. 찬 바람이 불고 금방 비라도 뿌릴 듯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었다.

동기들 홈피에 명퇴를 축하하는 글이 떴다. 짧은 답신을 올렸다.

원래 55세를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꽤 오래 버틴 셈이 되었네.
선험자들이 십중팔구 만류했지만 진즉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여겼기에 미련없이 그만 둘 수 있었어.
다음달에 경기도 광주로 이사해야 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되었고....

35년의 교직생활을 그만 두는데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지금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홀가분하고 개운하네.
그러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마땅한 대가와 노력이 따라야 하는 것도 유념하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거냐며 많이 묻는데,
당분간은 그저 아무 일 없이 빈둥거릴 예정이네.
아무 일 없음도 즐길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지.
무슨 일을 할까는 그 뒤의 문제겠지.
일 년 뒤가 될지, 십 년 뒤가 될지는 모르지만...

명퇴를 한다고 하니 용숙이가 <은퇴생활백서>라는 책을 보내 주었네.
거기에 이런 말이 있더군.
"삶의 옳은 방식이란 없으며, 단지 자신의 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일 속에서건 일을 떠나서건 마찬가지겠지.
삶이란 결국 자신의 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별로 명예스럽지 않은 명퇴지만 축하해줘서 고맙고...

이젠 남는 게 시간뿐이니 모임에는 빠지지 않겠네.

친구들, 건강하시고....
자주 만나도록 하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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