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 장의 사진(15)

샌. 2011. 3. 19. 08:37

내 교직생활 35년 동안 담임을 한 시기는 7년에 불과했다. 매우 특이한 경우다. 아마 교사들 대부분이 경력의 8할 정도는 담임을 맡으며 보냈을 것이다.

서른을 갓 넘겼을 때 학교에 과학주임이라는 자리가 새로 생겼는데 운 좋게(?)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당시는 한번 주임으로 임명되면 전근 갈 때에도 보직을 유지한 채로 이동했다. 그러니 이른 나이부터 담임을 안 하게 된 것이다. 40대에 들어 고등학교로 올라와서 보직을 벗었지만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담임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남에 있는 소위 명문이라는 K 고등학교에 있었을 때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때는 서로 담임을 하려고 교사들 간에 경쟁이 붙었다. 특히 고3 담임을 하려면 교장한테 특별한 인정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도 아무리 무능한 교사여도 한 번 정도는 담임을 시켜주었다. 그렇게 찾아온 기회로 담임을 맡아 보고 나는 두 손을 들어버렸다. 그때 받았던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강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그때 아이들과 학부모들한테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식의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 뒤로는 담임이라면 손사래를 쳤다.

후에 근무한 학교들에서는 여주 밤골 생활을 핑계로 담임에서 빠졌다. 내 관심은 이미 학교에서 떠나버렸다. 이렇듯 담임을 별로 안 했으니 제자가 없다. 더구나 중3이나 고3 담임은 전혀 못 해 봤으니 더욱 그렇다. 어디 가서 선생 했다고 얘기하기도 부끄럽다. 그런 점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는 다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교직에 미련이 없었으니 은퇴 뒤에 금단증상을 느끼지 않고 이렇게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다.

현직에 있는 동기 Y는 지금도 담임을 자청해서 한다. 이미 원로교사가 되어 수월하게 지낼 수 있음에도 아이들과 부딪치며 생활하는 게 좋단다. 그렇지 않으면 선생 하는 맛이 안 난다고 하니 그 열정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나 같은 사람은 일찍 명퇴를 해서 자리를 물러난 게 마땅히 잘 한 일이다.

앨범을 열어보니 옛날 담임 할 때 아이들과 찍었던 사진이 있다. 위의 사진은 첫 발령을 받았던 Y여중에서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과 찍었던 것이다. 배경이 왕릉인 걸로 보아 봄 소풍을 갔을 때로 보인다. 내 나이가 아직 20대였던 1970년대 후반쯤의 어느 해였다. 둘째 줄 맨 왼쪽에 있는 아이가 반장이었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무척 얌전하고 똑똑했다. 사진 속 소녀들은 지금 50대 가까이의 아줌마들로 변했을 것이다. 다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련히 궁금해진다.

이 사진은 그 몇 년 뒤 M중학교에 근무할 때 역시 담임을 한 아이들과 찍은 것이다. 소풍을 가면 꼭 반별로 이렇게 기념사진을 남겼다. 당시는 교복자율화가 되던 때라서 복장이 자유분방하다. 몇 년간 반짝 자율화가 되더니 다시 교복시대로 회귀되었다. 또, 지금은 아이들이 적어서 고민이지만 그때는 한 반 인원이 70명이나 되었다. 저 많은 아이들이 한 교실에 있었다니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담임 반 아이들 이름을 외우는데도 몇 달이 걸렸다.

지나고 보니 부끄러운 기억들만 자꾸 떠오른다. 저 아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애쓸 걸, 아이들 얘기에 더 귀를 기울일 걸, 좀더 눈높이를 낮출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게 미안하다. 그러나 지금 다시 교단에 서더라도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데 내 자신의 한계가 있다. 교육을 한답시고 거들먹거렸지만 교육이 뭔지는 더 오리무중이다. 저 때는 그나마 큰소리라도 치며 제 스스로 잘 난 체하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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