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잠자리의 보수화

샌. 2011. 3. 26. 07:22

일전에 아내와 여행을 하며 온양온천에 있는 호텔의 특A급 객실에서 일박을 했다. 하룻밤 자는데 25만 원이나 하는 방이다. 우리가 그 돈을 내고 묵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곳이다. 예약은 보통 객실로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추가 부담 없이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평일이라 객실 여유가 있고 마음씨 좋은 종업원을 만난 덕분이었다.

그런데 방이 아무리 좋아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고대광실에 살아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면 초가삼간에서 마음 편히 사는 것만 못하다. 나이가 들수록 집을 떠나 밖에서 잠자는 게 불편해진다. 잠을 깊이 들지 못한다. 젊었을 때는 아무 데나 누우면 잠이 들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잠자리도 보수화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 제일 걱정거리가 잠자리 문제다. 낯선 방에 베개도 맞지 않고 이불도 신경이 쓰이니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무용지물이다. 작고 초라한 내 집이 훨씬 낫다. 이래서 나이가 들면 밖에 나가는 게 자꾸 귀찮아지는가 보다.이젠 장인 어른을 이해할 수 있다. 체력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익숙한 것에 길들여지고 벗어나는 게 두려운 거다.

앞으로는 집에서 쓰는 베개를 가지고 다닐까, 고민중이다. 내가 이 정도로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 것 같다. 나이 들어 여행을 하려고 하면 신경 쓰이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중에 나이 들고 여유가 생기면 실컷 여행도 다니고 인생을 즐기겠다고 말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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