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비도 무서워진 세상

샌. 2011. 4. 7. 14:31

봄비가 내린다. 그러나 옛날의 그 비가 아니다. 봄비를 맞으며 산책하던 낭만은 사라졌다. 소나기를 온몸에 맞으며 뛰어놀던 시절은 동화 속 이야기로 남았다. 황사비나 산성비는 차라리 애교다. 이름도 생소한 ‘방사능 비’라니 더 섬뜩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아직도 방사성물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주변의 땅과 바다는 오염되었고 대기 중으로 퍼져나간 유출물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농도가 적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원자력 사고는 양이나 확률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 발전소는 400개가 넘는다. 고의든 재앙이든 일본에서 일어난 사고가 다른 지역에서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방사능 공포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만약 중국 원전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번에는 편서풍이 죽음의 바람으로 변할 것이다. 한반도는 방사성물질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고, 황해는 죽음의 바다로 변할 것이다. 문제는 한 번 방사능에 오염되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까지 재앙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플루토늄의 반감기는 2만 년이 넘는다. 현재 한국, 중국, 일본에서 운영중인 원전만 100개 가까이 된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례에서 보듯 불의의 사고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안심하라는 과학자나 정부 당국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원자력 발전소야말로 현대 문명의 어두운 상징물이다. 과학기술의 정수라는 원전은 가장 효율성이 높고 청정한 에너지로 선전되어 왔다. 그러나 이면에 숨겨진 실상은 파괴적이고 반생명적이고 추악하다. 경제 논리로 무장한 문명의 속성과 같다. 후대가 부담해야 될 환경과 방사성폐기물의 몫보다는 지금의 외형적 발전과 자본 축적이 중요하다. 돈이 된다면 영혼마저도 팔아먹을 것 같다. 그러나 값싸게 에너지를 얻는 대신 앞으로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다행히 중국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중단했고, 독일은 10년 내에 모든 원전을 폐쇄하고 2050년까지는 태양이나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로 100% 바꾸기로 했다.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 중심 정책을 고수할 모양이다. MB는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동안에도 아랍에미리트까지 날아가 원전 기공식에 참석했다. 원전을 반대한다는 대중의 목소리도 아직은 미미하다.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원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은 너무 위험한 철부지 짓 같아 보인다. 녹색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산업으로 정하고서도 내용면에서는 옛 것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내리는 비도 마음 놓고 맞을 수 없는 두려운 세상이 되었다. 문명의 편리함에 젖어있는 동안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잃어가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뒷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식수로 쓰며 살았다. 물을 사 먹어야 하는 세상이 올 줄 그때는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하물며 이제는 공기마저 마음 놓고 숨 쉴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는 기상청에서 방사능 오염 수치를 매일 발표하게 될지도 모른다. 집집마다 공기청정기와 방독면이 필수품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렇게 되다가는 조금이라도 빨리 태어난 게 복 받은 세대였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될지 모른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일을 어찌 할까  (2) 2011.04.22
이삿날의 해프닝  (0) 2011.04.20
만약에  (1) 2011.04.01
잠자리의 보수화  (0) 2011.03.26
한 장의 사진(15)  (1) 2011.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