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살림의 경제학

샌. 2011. 2. 8. 16:03

<살림의 경제학>은 강수돌 선생이 쓴 책으로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모든 인간이 노동력으로 평가되는 사회로 경쟁과 이윤, 출세와 성공이 체제의 핵심 논리다. 여기서는 삶의 주체들이 돈벌이의 도구로 대상화되고 만다. 사람들은 먼저 자본과 국가에 의한 '물리적 폭력'을 경험하는데 여기서는 학교와 군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뒤에는 '물질적 보상'에 길들여지고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 수용'을 하면서 체제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런 체제 안의 인간은 자신의 내적 욕구를 억압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래서 남는 것은 결국 피폐한 자연과 병든 몸뚱이, 세상에 대한 원망, 두려움과 불안감뿐이다. 저자는 이런 인간파괴의 경제를 '죽임의 경제'라고 부른다.

이런 '죽임의 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가 내세우는 것이 '살림의 경제'다. '살림의 경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와 더불어 사람의 내면과 정신을 살리는 경제다.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는 경제다. 부자가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적게 일하고 적게 먹고 적게 쓰면서 더 많이 존재하고 더 많이 관계하며 더 많이 행복해지는 삶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살림'은 '살림살이'를 뜻하기도 하지만 자연과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가 강하다.

저자는 살림의 경제를 구성하는 데에 5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제 1 원칙은 '생명 살림의 원칙'이다. 경제의 본래 의미대로 가난하더라도 예를 잃지 않고 더불어 도와가며 사는 것, 애환이 있더라도 늘 삶의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것, 부족하고 힘겹지만 활기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제 2 원칙은 '계속 살림의 원칙'이다. 지속 가능한 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제 1차 산업, 특히 유기농업이 살림살이 경제의 핵심 위치를 차지해야 하고 노동시간이 대폭 단축되어야 한다. 주 4일제와 하루 4시간 노동이 살림의 경제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나머지는 '스스로 살림의 원칙', '서로 살림의 원칙', '내면 살림의 원칙'이 있다.

살림의 경제에서는 일이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아실현이자 삶의 의미를 드높이는 과정이 된다. 또한 주체로서의 개인은 자율과 책임, 협동을 통해 살림살이 경제의 활력을 만들어낸다. 살림의 경제는 소규모성, 지역성, 분권성, 공동체성, 성찰성을 특징으로 한다.

살림의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성장 자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사다리를 올라갈 가치가 있는지,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토의해야 한다. 사회가 강요하는 집단의식이나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사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물결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부자가 되기보다는 소박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매일 규칙적 운동을 하거나 명상에 잠기고 취미생활을 한다 해도 사회적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그런 사회적 실천으로는 강박적으로 일에 매달리지 않아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자연의 시간에 가까운 리듬으로 사는 사회, 내면의 참된 욕구를 건강하게 실현하는 사회로 만드는 운동에 나서야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사회 시스템이 경쟁형 사다리 구조가 아니라 원탁형 구조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은 이에 맞는 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원탁형 구조에서는 모든 개성 있는 이들이 나름의 소질과 재주를 발휘하여 자기 행복과 사회 행복을 함께 추구한다. 제도적으로는 개성 있는 고교평준화, 개성 있는 대학평준화, 개성 있는 직업평준화가 되어야 원탁형 구조가 현실화할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각 개인들은 상호 소통과 연대를 통해 자기 행복과 사회 행복을 동시에 증진시킨다. 현재 이런 시스템과 가장 닮은 곳은 북유럽이 아닌가 싶다.

행복한 사회란 빈부격차가 크지 않고 사회적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으며 구성원들의 정치적 참여가 활발한 사회라고 한다. 소득은 행복지수와는 별 관계가 없다. 살림의 경제가 실현된행복한 사회를 저자는 대략 이렇게 제시한다. 첫째, 1차산업 중심의 생태사회가 되어야 한다. 둘째, 모든 분야에서 하루 한 나절 정도의 짧은 노동시간이 보장되고 초과노동 없이 기본 소득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땅, 집, 교육, 의료 문제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넷째, 고교와 대학뿐만 아니라 직업평준화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 현실은 양극화와 경쟁이점점 심해지고 있다. 너도 나도 돈을 많이 벌어 많이 소유하고 많이 소비함으로써 행복을 찾으려 한다. 그러자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동해야 한다.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자강박증과일중독증이야말로 심각한 병폐 중 하나다. 일중독증에 빠진 사람은 삶의 의미가 일을 하고 성취하는 데 있다. 일이 없으면 내면의 공허함을 견디지 못한다. 일을 열심히 하고 모범 근로자로 칭찬 받는 사람이 일중독증에 걸려 있을 확률이 높다. 성실하다는 의미도 이젠 다르게 해석할 때가 되었다. 이런 체제에서 내면의 행복을 누리기는 어렵다.

이런 악의 구조를 극복하자면 지금 이곳에서 나부터 실천하는 작은 혁명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면, 소박하고 건강한 밥상 차리기가 있다. 소박한 밥상을 위해 작은 텃밭이라도 직접 가꾼다. 만약 시골에서 산다면 뒷간, 가축, 텃밭이 삼위일체가 된 생태 순환형 살림살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아이들을 공부 노예로 만드는 경쟁의 대열에서 이탈시키기도 있다. 물론 이에는 엄청난 자기희생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느리게 가더라도 행복하고 바른 길을 가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또 저자가 예로 드는 것들은 대안적 식생활 운동, 생활협동조합 운동, 귀농 운동, 대안교육 운동, 마을공동체 운동, 대안화폐 운동, 대안에너지 운동, 노동자기업 운동, 공정무역 운동, 대안세계화 운동 등이 있다. 이런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초석을 놓을 수 있다.

책의 내용을 두서없이 정리해 보았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허황되게 보일 수도 있다. 인간의 욕망을 과소평가한 순진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긴 역사의 흐름으로 볼 때 인류가 지향해야 될 방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장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모순으로 인해 언젠가는 새로운 삶의 시스템이 등장할 것이다. 그때 우리가지키고 이루어내야 할 가치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는 지금부터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저자는 말만이 아니라 실제 농촌에 내려가 살면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이 이 책의 진정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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