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샌. 2011. 2. 10. 12:05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다룬 작품은 수없이 나와 있다. 그동안 영화, 다큐멘터리, 소설, 자서전, 르포 등 다양한 장르로 소개되어 그 내용이 익숙하다. 그런데 <쥐>는 특이하게 만화로 된 작품이다. 1992년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유대인은 쥐로, 나치주의자는 고양이로 그려저 있는 것이 도리어 일상의 친숙함 마저 앗아가 버리는 충격과 감동을 준다.

저자인 아트 슈피겔만은 2차대전 후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겪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가족과 친척, 이웃 대부분은 게토와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슈피겔만은 아버지로부터 구술 받은 고난의 여정을 만화로 표현했다. 다른 경험담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인간의 야만성에 대해 치를 떨게 되고, 인간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의 극한이 어디까지인지 대해 놀라게 된다.

이야기는 과거의 폴란드와 현재의 뉴욕을 오가며 진행된다. 전자는 무수한 죽음의 위협과 믿기 어려운 탈출, 그리고 구금과 배신의 공포로 가득한 고통스런 이야기다. 후자는 전쟁의 트라우마를 지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연민, 유머가 들어있다. 그러니까 최후의 생존자의 증언이면서 그 자손들까지 감내해야 할 몫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보다 보면 과연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의 생존담은 워낙 많이 접해왔기 때문에 색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쥐>가 주는 충격과 감동은 남다른 데가 있다. 만화라는 사실적이며 감성에 호소하는 양식 때문인 것 같다. 더구나 여기 그림은 단순화되어 있고 선은 굵고 거칠다.또 쥐와 고양이로 묘사한 비현실적 장면이 더욱 현실적이게 만드는 효과도 내고 있다.

이 책을 처음 폈을 때 두 페이지에 걸쳐 나오는 첫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배경은 1958년 뉴욕인데 저자가 열 살 이었을 때 친구들과 놀다가 롤러스케이트 끈이 끊어져 꼴찌를 했다. 친구들은 놀리면서 다른 데로 갔다. 혼자 남아 외톨이가 된 저자는 울면서 마당에서 일하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티, 그런데 너 왜 우는 거냐?"

"제가 넘어졌는데요, 친구들이 절 두고 가버리잖아요."

"친구? 네 친구들? 그 애들을 방 안에다 먹을 것도 없이 일주일만 가둬놓으면, 그땐 친구란 게 뭔지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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