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은퇴생활백서

샌. 2011. 1. 27. 20:45

며칠 전에 친구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보내줄 책이 있으니 집 주소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책인가 궁금했는데 다음 날 <은퇴생활백서>(어니. J. 젤린스키, 아이즈북)라는 책을 받았다. 이번에 명퇴를 한다고 했더니 마음에 새겨두었던 모양이다.

나는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책은 삶의 기능적인 면만 강조해서 세상적으로 잘 사는 테크닉만 가르쳐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인생을 경박하게 바라보는 그런 관점이 싫다. 그래서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은퇴에 대한 안내서적에는 관심이 없었다. 읽어봐야 뻔한 내용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이 책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친구가 강권하지 않았다면 책상 한 켠에 밀어놓았을 것이다. 서론이 이렇게 길어진 것은 예상외로 책 내용이 알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똑 같이 은퇴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어떤 사람은 따분하고 무료하게 지낸다. 어떤 사람은 은퇴 뒤에 더 건강해지는데, 어떤 사람은 쇠약해지고 우울증에도 걸린다. 심지어는 은퇴의 충격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자유시간을 지루해하고과거의 일에 매달렸던 때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서글픈 측면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은퇴 뒤의 인생 2막을 즐기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성공적인 은퇴생활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러 사례를 통해 쉽게 설명해준다. 은퇴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비롯해 경제적 문제, 시간 관리, 심리적 압박감을 극복하는 방법 등이 나온다.

우선, 은퇴를 자신의 내적세계와 만날 수 있는 도전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은퇴는 새로운 삶으로 도약하는 시기이다. 직업이나 일에서 얻었던 정체성을 넘어 자신의 진정한 자아을 발견해야 한다. 저자는 매일 아침 이런 자기선언문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나는 창조적이고 만족스러운 삶을 즐길 권리가 있다. 나는 일, 소유물, 돈에서 비롯된 정체성보다는 창조성, 관대함, 자발성, 유머감각, 마음의 평화, 새로운 경험, 행복, 정신세계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겠다."

책에서 강조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자신에게 맞는 활동을 찾아라. 열정을 가지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평생학습자로서 공부하는 것, 예술 취미, 글쓰기 같은 자신의 감추어진 적성을 발견하라.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하라. TV 앞에 앉아 있는 건 절대 금물이다. 행복한 은퇴생활은 TV 시청 시간에 반비례한다.

2. 친구가 재산이다. 늙을수록 인간관계가 소중하다. 그러나 백 명의 그저 그런 친구들보다 한 명의 진정한 친구가 더 낫다. 친구는 숫자보다 질이다. 지미 카터는 성공적인 은퇴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들었다. 재미있다고 느끼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아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 맺기다.

3.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라. 건강을 지키는 데는 음식, 운동, 긍정적 태도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한다. 운동으로는 특히 지속적인 걷기를 권한다. 그리고 두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적인 도전을 즐겨라.

4. 삶의 활력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나라. 가능하면 색다른 여행을 경험하라. 떠날 곳이 있다면 돈은 문제되지 않는다.

5. 자신의 꿈에 충실하라. 대중과 거리 두는 삶을 선택하라. 삶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행복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이기적이라는 비난에도 개의치 말라. 괴짜가 되어도 좋다. 여기서 괴짜는 창조적이고 호기심이 풍부하며 이상주의적이고 지적이며 자신의 취미에 몰입하는 사람이다.

6. 돈은 중요하지 않다. 행복은 돈이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돈과 재산에서 멀어질수록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인생의 황금기는 황금을 잊어버릴 때 찾아온다'는 어느 시인의 금언을 기억하라. 만약 충분한 재산이 있다면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고 자신을 위해 사용하라. 쓰지 못하는 돈은 내 돈이 아니다.

7. 인생의 작은 기쁨을 즐겨라. 등을 토닥여주는 따뜻한 격려, 애정 어린 배려, 보름달, 빈 주차장, 바스락거리며 타는 모닥불, 소박한 식탁, 황홀한 석양, 따끈한 스프, 시원한 맥주 한 잔.... 다른 위대한 것에 마음을 뺐기지 말고 인생의 작은 기쁨들을 맛보라. 가장 중요한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좀더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은퇴 뒤의 삶에 대해 나름으로는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직장에서 일중독으로 지내지 않은 걸 이젠 다행으로 여긴다. 높은 지위에 있었거나 일이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은 은퇴 뒤의 텅 빈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나는 자아실현의 공부나 혼자 놀기에 상당히 훈련되어 있고 익숙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장점이다. 그러나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인간관계가 좁은 것은 나의 단점이다. 앞으로 많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내 또래의 직장 동료들은 일찍 퇴직하는 걸 상당히 두려워한다. 무료함이라든가 건강문제, 목적성의 결여, 우울증 등 은퇴의 위험성이 두려운 것이다. 또 일부는 경제적인 이유나 배우자의 반대 등도 있다. 물론 나에게도 이런 사항들은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수 년이 지났을 때 나에게는 이런 일들로 괴로움을 겪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나를 포기하고 얻는 과실이 더 달콤했다고 자신있게 말해주고 싶다.

이 책에서는 삶의 활동적인 측면을 많이 다루고 있다. 은퇴 뒤의 생태적이고 정적인 삶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은 좀 유감이다. 여행을 소개하면서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쉼없이 움직이는 것에 비중을 둔다. 어찌 보면 일중독이 취미중독으로 전환된 느낌도 든다. 물론 동적인 활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구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공동체 안에서 보람 있게 살아가는 삶도 소중하다.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 공동체의 행복을 고민하고 함께 하는 노년의 삶도 강조해 주었으면 좋았겠다.

끝으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 더 많은 삶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여러분의 목표는 삶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이어야 한다. 여러분의 삶을 아주 경이로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삶이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온몸으로 살아야 한다. 인생에 귀 기울이고, 인생을 바라보고, 인생을 느껴라. 그리고 자신에게 항상 솔직하라.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남들이 말하는 것, 심지어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조차 맹목적으로 믿지는 마라. 중요한 건 오직 자신이다. 자신에 집중하라. 무엇이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무엇이 여러분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지 말해줄 것이다. 무엇보다 무엇이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리고 자신의 대답에 귀 기울여라.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라. 지금부터 몇 년이 흐른 뒤 여러분은 자신이 한 일보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훨씬 더 후회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은퇴생활은 하나의 게임이다. 행복한 사람은 그 게임을 직접 뛰는 선수들이고, 불행한 사람은 구경만 하는 관객들이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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