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저녁 8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밤 12시가 넘어 곤명(昆明)에 도착했다. 바로 호텔로 직행하여 잠을 잤는데 난방이 안 되는 방은 너무 추웠다. 곤명을 춘성(春城)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시사철 따뜻한 봄이기 때문이란다. 온화한 기후는 난방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이런 시기의 밤이면 일정 부분 추위를 감내해야 하는 것 같다. 마치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의 추위를 힘들어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러시아는 밖은 춥지만 대신 실내 난방은 무지 잘 되어 있다고 들었다.
호텔 15층에서 내려다 본 곤명은 예상 외로 큰 도시였다. 인구가 500만이 넘는다고 한다. 낡은 건물과 현대식 빌딩이 섞여 있어 이곳에서도 변하는 중국을 실감할 수 있었다. 건물 옥상마다 가득 찬 태양전지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춘성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무나 숲이 보이지 않는 메마른 도시였다. 봄의 도시 곤명으로 오세요, 서울에서 상상한 곤명은 꽃과 숲으로 둘러싸인 녹색의 도시였는데 말이다.
서산(西山)에 올라가니 멀리 곤명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앞이 곤명호(昆明湖)인데 그나마 이 호수로 인하여 도시에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호숫물은 소통이 잘 안 되는지 녹조로 가득했다.사진 아래쪽 건물은 돈 많은 사람들의 별장이라고 한다. 이곳 운남 지역은 중국에서도 변방으로 경제적으로는 낙후된 지역이다. 운남 지역에는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의 의식이 문제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전통과 개발의 조화는 어디서도 문제가 되는 것 같다.
관광을 나갈 때면 매번 곤명역 앞을 지나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광장은 늘 사람들도 북적였다. 곤명의 중심 거리는 지하철 공사로 혼란스러웠다. 교통체증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도 주민들 모습에서는 빈부격차가 심하게 느껴졌다. 향후 중국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우리가 묵었던 금화(錦華)호텔이다. 건물 크기로 봐서는 이곳에서도 고급호텔에 속할 것 같은데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너무 엉성했다. 가이드가 첫날 왜 중국을 ‘차이나’라고 하는지 물으면서 한국과 20년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해서 웃었던 적이 있었다.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것은 그렇다 쳐도 호텔 변기가 고장이 나서 방을 옮겨야 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도 스스로 수리를 하면서 조심스레 볼 일을 봤다.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빈약한 중국의 모습이었다. 더구나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따라오자면 더 많은 시간일 걸릴 것이다.
곤명의 인상에 갈매기도 빠질 수 없다. 우리는 취호공원 등 세 군데 호수를 찾았는데 물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갈매기가 있었다. 내륙에까지 바다갈매기가 날아와 사는 이유가 궁금했고, 사람과 갈매기의 공존이 재미있었다. 호수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고 사진을 찍으며 즐기고 있었다. 또 곳곳에서 중국인들 특유의 춤과 체조를 하는 광경도 보였다. 곤명에서의 흐뭇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곤명의 여러 곳을 둘러보았는데 관광객은 한국 사람들밖에 없었다는 점이 특이했다. 나흘 동안 일본 사람이나 서양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가이드한테 물어보니 지금은 한국 사람들만 찾아오는 철이라는데 글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원통사(圓通寺)에 들렀다. 중국의 절은 향냄새에 배어있다. 향을 많이 피워야 복을 많이 받는다고 믿는 건지 연기 나는 향을 한 다발씩 들고 기도하는 모습이 특이했다. 도심에 있는 절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절에 비해 어수선하고 복잡했다. 같은 불교지만 문화적 차이를 많이 느꼈다. 하긴 외국인이 서울 조계사에만 들린 뒤 한국의 절을 전체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리라.
우리 네 명은 출발할 때 서로의 호칭을 약속했다. 세 명은 사장으로 했고, 나는 박사였다. 내키지 않았지만 도리 없었다. 그러나 격에 맞지 않는 호칭은 이내 들통이 났고 어색해졌다. 선생은 어디 나가도 선생의 냄새가 나는가 보다. 무슨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다. 선생 행세 하는 걸 잠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용문석굴(龍門石窟)은 서산(西山)의 가파른 절벽에 굴을 파고 만들었다. 72년에 걸쳐 길을 만들고 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곳 사원에는 불교와 도교, 유교가 혼재하고 있다. 중국인들이야말로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를 몸으로 보여주는 민족이다. 이곳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관람한다. 오른쪽으로 넓은 곤명호와 곤명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금전(金殿)은 1600년대에 세워진 도교 사원이다. 곤명시 외곽 명봉산(鳴鳳山)에 있는데 산 전체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시간 여유가 된다면 천천히 산책하면서 둘러보고 싶은 곳이다.
예전에 중국은 ‘만만디’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 가서 본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 얼굴에서 여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들은 무엇엔가 쫓기듯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의 ‘빨리빨리’를 따라하지 않으면 쫓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들도 변하고 향상되어야겠지만 너무 과속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부작용은 언젠가 나타나지 않을까. 거대 중국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마지막 코스가 운남민족촌(雲南民族村)과 운남영상가무쇼 관람이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석림(石林)과 운남영상가무쇼였다. 석림이 자연이 빚은 예술이라면 영상가무쇼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예술이었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만족하고 불편했던 것은 잊어버릴 수 있다. 운남영상가무쇼는 운남 소수민족의 전통 무용과 생활 형태를 춤으로 보여주는 공연이다. 역동적이며 화려하고 아름답다. 공연의 주제며 배우들의 연기, 짜임새,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었다. 특히 공작춤과 월광무는 일품이었다. 이런 공연을 앞으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향이 과하게 들어간 중국음식 때문에 식사 시간이 괴로웠다. 음식을 받으면 향 여부를 체크하는 게 먼저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잘 먹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음식에 그리 까다로운 편이 아닌데 이 향 맛만은 참지를 못했다. 그리고 식후에 커피를 마시기 어려운 것도 애로사항이었다. 중국은 차(茶) 문화가 발달되어 커피는 마시기 어렵다.
패키지여행에서는 가이드를 잘 만나야 한다. 나로서는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최악이었다. 거짓말과 자기 과시, 물건 강매 등 불쾌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고객들에게 돈 뜯어내는 수법이 노련했다. 우리는 15명이 일행이었는데 점잖은 분들이어서 큰 마찰은 없었지만 여러 차례 기분이 상했다. 얘기를 들으니 중국이나 동남아 여행은 어쩔 수가 없다고도 한다. 앞으로 패키지여행을 나갈 때는 좋은 가이드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부터 해야겠다.
이번 여행에서 또 하나 아쉬웠던 건 개인행동이 너무 제한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패키지여행의 한계인지 모르지만 어디든 깃발만 따라 이동해야 하니 내 관심 있는 곳을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가이드는 전체적인 안내를 해주고 어느 정도 자유시간을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또 호텔에 돌아와서 저녁 시간은 완전히 출입금지였다. 밤거리가 위험하다고 겁을 주는데 어찌할 수 없었다. 호텔 앞 작은 가게에 나가서 사 온 맥주를 홀짝인 게 고작이었다.
9일 밤 2시 30분에 곤명을 출발하여 아침 7시에 인천공항에 닿았다. 막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한반도를 날았다. 수도권으로 들어서니 하늘의 별들이 온통 땅으로 쏟아진 것 같았다. 하늘은 어둡고 땅은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