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종남별업 / 왕유

샌. 2019. 6. 22. 10:50

중년 이후에는 도를 더욱 좋아하여

만년에 종남산 기슭에 별장을 마련했네

흥이나면 홀로 그곳으로 찾아가나니

얼마나 좋은지는 오로지 나만이 알 뿐이라

 

걷고 또 걸어 물길 시작되는 곳에 이르러

가만히 앉아서 피어오르는 구름을 본다

우연히 산속에서 산골 노인을 만나

담소를 나누다가 돌아가는 길 잊었다네

 

中歲頗好道

晩家南山수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偶然치林수

談笑無還期

 

- 終南別業 / 王維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701~761)의 전원 예찬이다. 왕유는 종남산 기슭에 터를 마련하고 관료 노릇을 하는 틈틈이 은둔 생활의 정취를 즐겼다. 말년에는 별장을 짓고 속세에서 떠나 불교에 심취하며 초연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 시는 그 시절에 지은 것 같다. 세상사를 잊은 유유자적이 부럽다. 오두막일 망정 아무 때나 훌쩍 떠날 수 있는 별업(別業)을 그리다가도 결국은 마음 보따리로 돌아온다. 송곳 하나 꽂을 데 없이 속 좁은 바탕이라면 어디 간들 여유를 누리겠는가. 아무리 멋진 별장이라도 감옥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책상 앞에는 백거이가 쓴 '寵辱憂歡不到情'이라는 시구가 적혀 있다. '총애도 욕됨도 근심도 기쁨도 내 마음에 이르지 않나니'라는 뜻이다. 도대체 얼마나 맑고 투명해져야 옛 성현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거나. 먼 나라에 가서 다시 떠올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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