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애기와 바람 / 이원수

샌. 2019. 12. 6. 10:52

찬 바람이 제아무리 많이 불어도

애기는 꼭 밖에 나가 노올지.

 

"감기 들라, 가지 마라."

할머니가 붙들면

고개를 잘래잘래 도리질하며

"아냐, 아냐 감기 없쪄."

 

문 열고 내다보면 바람맞이 밭길에

아, 우리 애기는 뛰어다니네.

 

떼지어 몰려가는 겨울바람 속으로

저기 우리 애기는 뛰어다니네.

 

- 애기와 바람 / 이원수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손주를 맞아 집으로 돌아올 때 할머니와 손주는 자주 실랑이한다. 놀이터 옆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그네 타고 놀래."

"안 돼. 추워서 감기 걸리면 큰일 나."

"난 안 춥단 말이야."

 

손주가 떼를 쓰면 할머니가 질 수밖에 없다. 따스한 날은 미세먼지 때문에 할머니는 또 걱정이다. 우리가 자랄 때는 공기 걱정, 날씨 걱정이 어디 있었는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산과 들을 뛰어다녔지.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단지 안 좁은 놀이터에서, 그마저 좋다고 깔깔대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편으로는 측은지심이 들면서, 다른 편으로는 푸른 생명의 약동에 경탄한다. 아이들을 보라. 어떤 폭풍한설이 몰아치더라도 저 원초적 생명의 기운을 꺾을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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